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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최홍희를 다시 말한다 (6)
68년 '국제사범양성소' 설치
터키와 홍콩, 월남, 태국 등지를 순회하며 활동반경 넓혀
  • 서성원 기자
  • 승인 2007.02.05 10:30
  • 호수 533
  • 댓글 0

1966년 최홍희가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한 것은 그의 말대로 "태권도를 온 천하에 뻗치자"는 데 있었다.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외국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보급, 지도할 수 있는 국제사범을 양성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68년 '임시국제사범양성소'를 설치했다.

2001년 오노균 남북태권도연구소장(오른쪽)이 캐나다에 있는 최홍희 총재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당시 국제사범양성소를 수료한 사람은 조희일, 박정태, 조수세 등이었다. 국제사범 양성에 남다른 의지를 보인 최홍희의 이같은 행동은 세월이 지날수록 과신(過信)으로 이어져 대한태권도협회와 분쟁으로 치닫게 된다.

한편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최홍희는 월남 사이공에 도착,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태권도 교관 및 수련생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당시 월남 전역은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지략으로 태권도가 '민사심리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당시 최홍희는 채명신 사령관을 이렇게 평했다.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2권 참조>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이 잘 싸운 이유가 만약 태권도의 위력에 있었다면 그것은 초대 주월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숨은 공로이다. 채 장군은 휘하 전 부대에 태권도를 장려함으로써 전력을 강화해 베트콩이 접근을 꺼렸고, 끊임없이 태권도 시범을 통해 대민사업에 절대적인 성과를 거뒀다.'

월남 정부로부터 태권도 보급에 공헌했다는 의미로 1등 무공훈장을 받고 한국에 돌아온 최홍희는 대한태권도협회 임원들과 함께 태권도 품새(형) 동작과 그 동작에 대한 명칭 및 술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당시 태권도계는 품새 제정과 동작 통일의 움직임이 한창이어서 김순배, 박해만, 이영섭 등이 중심이 되어 품새 제정에 온힘을 기울였다.

최홍희는 당시 대한체육회 강당에서 열린 형(型) 심의과정에서 동작자체도 엉망이고 그에 대한 명칭이나 술어조차 없다고 지적하면서 "형의 이름이 먼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형의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동작으로 상징해 놓아야 한다. 또 누가 만들었는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자가 있어야만 그 형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동작의 뜻을 물을 수 있고 권위도 서게 된다"며 대한태권도협회 임원들이 노고를 폄하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자신이 만든 '창헌류'에 대단한 자부심과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미루고 짐작할 수 있다.

최홍희는 60년대 말,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로서 노병직 부총재와 권재화 사무총장, 남태희 사범과 함께 터키와 홍콩, 월남, 태국 등지를 순회하며 자신의 활동반경을 넓혀나갔다. 이때 그는 자신과 함께 동석한 사람들에 대해 "어느 좌석에 가도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기는 고사하고 입 한 번 열어본 적이 없다. 이는 말의 소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이 말을 노병직과 권재화, 남태희 등이 들었다면 몹시 섭섭해 할 것 같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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