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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최홍희를 다시 말한다 (1)
함경북도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가라테 심취
“이원국이 내게 청도관 맡겼다” 주장…1954년 ‘오도관’ 창설
  • 서성원 기자
  • 승인 2006.12.18 11:18
  • 호수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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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고(故) 최홍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는 지난 11월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최홍희의 공(功)은 크다.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도 역시 지나치다”고 밝혔다.

<본지>는 최홍희와 관련된 각종 사료와 증언, 그리고 그의 회고록을 토대로 그가 남긴 태권도 발자취를 9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주>

최홍희는 1918년 11월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5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약한 체질을 타고나 부모가 근심할 정도였다. 최홍희는 10대 시절 가수의 꿈을 품고 돈만 생기면 레코드를 사서 측음기를 틀어놓고 붓글씨를 쓰면서 노래를 불렀다.

항간에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술을 마시기 좋아했고, 화투치는 것을 즐겼으며, 학업을 게을리 해 낙제를 했다고 한다. 또 소학교 5학년 시절, 월사금(등록금)이 올랐다며 친구들을 규합,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주재소에 끌려가 1주일간 구금을 당하기도 했다. <스포츠조선, 이호성의 ‘태권도 아메리칸드림 40년’ 참조>

어쨌든 동맹휴학을 주도해 무기정학을 받은 최홍희는 1939년 아버지의 지시로 서도(書道)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학문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시절, 최홍희는 가라테 수련에 심취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가라테를 했는가는 그 당시 동경시내에 서있던 목재 전봇대들은 잘 알고 있다. 교복을 입은 채 거리를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전봇대를 한 번씩은 때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본 중앙대학 가라테부에서 활동하던 최홍희는 ‘일본 가라테의 아버지’로 알려진 후나고시(船越)의 송도관(松道館·쇼도깡)을 찾아가 가라테의 체취를 느끼기도 했다.

그 후 1944년 1월, 학도지원병으로 끌려간 후 학병사건으로 형무소 생활을 한 최홍희는 해방이 되자마자 몽양 여운형 선생이 학병단을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군사영어학교(국군창설요원)에 입교했다. 그리고 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육군소위 임관을 받고 전남 광주에서 군대생활을 한 뒤 육군 총사령부 정보참모를 거쳐 육군종합학교 준장이 됐다.

1949년에는 최덕신 대령과 함께 미국 조지아주 포트베니보병학교로 유학을 떠났지만 한국전쟁(6.25)이 일어나자 귀국해 1950년 8월에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부교장 겸 교수부장을 맡았다. 그 무렵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청도관 창설자 이원국을 만났다는 게 최홍희의 주장이다.

 최홍희의 증언.
“제자 손덕성과 함께 온 이원국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에 가면 귀국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나보고 ‘당수도 청도관’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나의 활동과 소문을 잘 알기 때문에 청도관을 맡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재삼 간청해 나는 일단 인수할 것을 약속했다. 그것이 후일 내가 청도관을 지휘하게 된 유래이다."

이원국이 일본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그는 “1.4후퇴 때 서울에 남아있으면서 청도관 옥상에 붉은 깃발을 내걸고 부역한 것이 탄로돼 추방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최홍희는 1953년 9월, 제주도에 창설된 보병 제29사단(소위 익크 사단)의 사단장을 맡으면서 태권도 인생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사단 마크를 직접 도안한 그는 강군(强軍)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청도관 출신의 남태희 중위와 한차교 하사를 불러 사범으로 임명하고 전 장병에게 무술(당수도)를 가르쳤다.

그 후 1954년 송요찬 장군이 지휘하는 제3군단에 배속된 최홍희는 동해안을 포함한 동부전선 일대의 작전 책임을 맡아 이곳에 오도관(吾道館)을 창설하고, 본격적으로 태권도계 전위에 뛰어들었다.

최홍희는 ‘오도관’에 관해 “오도관(吾道館)의 오도(吾道)는 공자가 ”나는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야(吾道一以貫之)“라고 한 말이 나의 성격과 비슷하거니와 내가 연구하는 태권도를 세계로 뻗치겠다는 포부를 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말에 태권도 원로 홍정표는 “무도의 특성상 ‘나의 길’이라는 오도(吾道)는 오만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다음호에 계속

서성원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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