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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최홍희를 다시 말한다 (4)
1959년 將星 신분 내세워 ‘대한태권도협회’ 창설
  • 서성원 기자
  • 승인 2007.01.15 10:37
  • 호수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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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3월12일, 공군 수송기를 타고 목적지인 월남 사이공에 도착한 국군태권도시범단(단장 최홍희 육군 소령)은 3주일간 월남 군부대, 경찰, 학교 등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시범을 펼쳐보였다.

시범단이 나트랑에 갔을 때였다. 나트랑 도지사는 시범단을 맞이하며 일반 사람과 체구가 다르지 않은데 어디서 그런 무지무지한 힘이 생기는 것이냐고 물었다. 태권도의 위력을 들은 사람들은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스모선수들처럼 몸집이 큰 것으로 상상했던 것이다.

1959년 9월, 자신의 의지대로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한 최홍희(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협회 임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최홍희는 오척 단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해 “작은 몸이라도 과학적으로 수련하면 어마 어마한 힘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 아마 하늘이 태권도를 위해 나를 작은 체구로 태어나게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국군태권도시범단을 인솔하고 월남과 대만 등 동남아 순회시범을 마치고 기세당당하게 귀국한 최홍희는 대한체육회와 동등한 무도회를 별도로 창설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던 중 부득이하게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유사 무도단체를 통합해 협회를 조직해야 했고, 협회의 명칭 통일이 선결과제였다.

최홍희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9년 가을 원효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지도관 윤쾌병, 송무관 노병직, 창무관 이남석, 무덕관 황기 등 태권도 모체관(母體館·기간도장)의 관장을 초청, 약식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처럼 그가 협회조직과 명칭 통일을 위해 좌담회를 주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최홍희가 청도관과 오도관을 중심으로 ‘태권도회(跆拳道會)'를 조직한 후 군 장성 신분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날 최홍희가 주재한 간담회는 시종일관 그의 뜻대로 진행됐다. 특히 협회 명칭을 결정할 때는 그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노병직, 윤쾌병, 이남석 등은 ‘공수도',를 주장했고, 황기는 당수도가 좋다고 했다.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참조>

최홍희가 고집한 ‘태권도'는 50년대 중반부터 오도관과 청도관이 쓰고 있던 터에 다른 관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홍희는 좌담회에 참석한 관장들의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태권도를 밀어붙여 ‘태권도'로 하자는 데 합의를 하게 됐다. 공수, 당수는 일본말로 가라테인데, 민족 주체성없이 가라테를 고집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게 당시 그의 지론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권도계는 1959년 9월 3일, 문교부 체육과장과 대한체육회 이사의 입회한 가운데, 대한체육회 회의실에서 청도관, 오도관, 송무관, 창무관, 지도관, 무덕관의 대표들이 모여 회합(會合)하고 총회를 거쳐 대한태권도협회(大韓跆拳道協會)를 창립했다.

최홍희는 훗날 자신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되고, ‘태권도'가 협회 명칭으로 된 것은 관 대표들이 육군 소장이라는 자신의 권위에 눌려 순순히 응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한 최홍희는 자신이 회장직을 맡고, 부회장에는 노병직과 윤쾌병을 선임했다. 그리고 이사장은 황기, 상임이사에는 이종우, 현종명, 고재천, 이영섭이 선임됐다. 그리고 이사에는 엄운규, 배영기, 정창영 등으로 집행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대표 심사위원은 노병직과 윤쾌병, 심사위원은 이남석, 엄운규, 현종명, 정창영 등이 맡았다.

당시 협회 임원구성과 관련, 한켠에서는 황기를 이사장으로 선출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황기가 차지하는 태권도계의 위치때문이었다. 이때 崔는 연장자와 고참자를 내세워 이같은 반발을 잠재웠다.

그러나 대한공수도협회가 와해되면서 각 유파들을 끌어 모아 엉겹결에 결성된 대한태권도협회는 무덕관 관장 황기가 개인 감정으로 탈퇴하고, 대한체육회 가입절차를 밟고 있던 중 4.19로 인해 사상누각(砂上樓閣)의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성원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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