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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16)돌 사이 맑고 찬 우물…
표주박 하나면 뜻이 통하리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10.16 22:35
  • 호수 742
  • 댓글 0

[도산서원(陶山書院) -3]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 부모와 자식, 조국과 고향처럼 운명으로 묶이는 만남을 제외하고는 선택이 아닌 일이 없다. 결국 행정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가장 좋은 길이라고 판단되는 한 가지 방법을 골라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1969년 ‘도산서원 성역화사업’이 펼쳐질 때에 관계당국은 저 아래 낙동강 기슭의 옛길을 버리고 대안(代案)으로 산허리를 깎아 지금 우리가 다니는 널찍한 길을 내는 방안을 선택했다.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단연코 그렇다고 동의하고 싶다. 35번 국도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거의 높낮이 없이 서원 앞마당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단순하고 깔끔한 길이니까. 서원을 은둔자(隱遁者)로 숨겨두지 않고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게 해줄 바에는 이렇게 밖에 더 하겠는가.

  그렇지만 세상에는 백 가지 경우를 모두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는 법. 이 새 길 때문에 원래의 서원 앞자락이 제 모습을 크게 상실하고 말았다. 옛날 사진을 보면 앞마당이 심한 가풀막은 아니지만 비스듬한 경사면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당 오른쪽 한 그루의 벗나무가 밑동이 흙에 파묻혀 마치 네 그루처럼 보인다.
이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깊은 곳은 5미터 이상 흙을 부어 돋궈버렸다. 이 공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거목들. 벚나무 왕버들 은행나무 등이 무릎까지 땅에 묻힌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의 자세와 표정들이 매우 어색하다. 벚나무는 몸체 줄기가 땅속에 묻혀 한 그루가 마치 네 그루로 보이고 왕버들은 옆으로 길게 뻗은 굵은 가지가 땅에 닿을 듯 불안하다.

  아울러 진입로가 마당 서쪽 구석으로 연결됨에 따라 옆문으로 드나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원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이 점을 가장 아쉬워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새 길은 그대로 두고 마당 근처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내리막 샛길을 터서 옛길의 오르막 계단과 연결시켜 주는 방안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별로 힘들 것 같지도 않은데.

  옛길의 자취와 앞마당의 변화 등에 관하여 정확하게 확인해보고 싶어 서원관리사무소로 전화했다. 젊은 직원이 받았다.
  “옛길과 앞마당의 원래 모습에 관하여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려면 그런 정도의 사실은 파악하고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으로 2년 동안 이곳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기간이 지나면 본청(안동시청)으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문화재 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른 직원은 안 계십니까?”
  “한 분이 계시긴 한데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그럼, 다른 질문 한 가지. 수백 년 된 거목들에 관해서는 왜 설명이 없습니까? 안내판 하나라도 세워둘 일이지.”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답답합니다. 제대로 된 안내판을 세우려면 나무의 나이, 심은 연도, 심은 사람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기록이 없으니 설명문 자체를 작성할 수 없겠지. 그러나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면 흥미 있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왕버들’의 최고 수명, 현재의 상태를 놓고 추정할 수 있는 나이. 퇴계 선생이 심은 것인지 아니면 훗날 심은 것인지를 짐작할 만한 자료는 없는지 등을 따져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詩)들을 스스로 골라 엮은 ‘도산잡영(陶山雜詠)’이라는 시집이 있다. “도산서당에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시로 읊은 것들”이라는 뜻. 그 가운데 ‘골짜기 물가의 버드나무(澗柳)’라는 시가 있다.
 
 澗邊垂柳, 濯濯風度 (간변수류, 탁탁풍도)
 골짜기 시냇가의 버드나무, 반짝반짝 빛나는 수려한 모습
 陶邵賞好, 起我遐慕 (도소상호, 기아하모)
 도연명과 소옹이 버드나무 감상하며 즐기던 머나먼 옛일 그리워지네

 無窮造化春 (무궁조화춘) 봄의 조화 끝이 없음은
 自是風流樹 (자시풍류수) 풍류 넘치는 나무들 바로 그 때문이네
 千載兩節翁 (천재양절옹) 천년을 사이에 둔 정절(靖絶 ·도연명) 강절(康節·소옹) 두 노인네들
 長吟幾興寓 (장음기흥우) 길게 읊어 흥을 노래함이 몇 번이던가

  지금 우리가 보는 왕버들은 퇴계의 서당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40미터 정도 거리에 있다.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시를 지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왕버들의 수명이 5백년 가까이 되는지 과학적으로 알아볼 일이긴 하다.

 

   
앞마당에 있는 우물 ‘열정(冽井)’. 차고 깨끗한 물이라는 뜻으로 퇴계가 역경에서 인용하여 이름을 지었다.
앞마당에서 서원으로 들어가려면 우물을 지나가야 한다. 역시 퇴계답게 ‘열정(冽井)’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시를 남겼다. 한자(漢字)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긴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어 우리말 번역만 적는다.

 서당 남쪽 돌우물 달고 차네
 천년세월 안개 속에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덮지 마세

 돌 사이 우물 맑고 차가워
 자연 그대로 고이니 어찌 슬프리요
 세상 번잡 피하여 그윽한 곳 살려하니
 표주박 하나면 서로 뜻이 통하리
 
  이 짧은 글 속에 많은 전고(典故)가 스며 있다. 주역을 중심으로 두보와 소식의 시(詩), 주자의 글, 논어의 명구(名句)들이 살아 움직인다. 마치 수많은 고전들을 마음껏 주물러 날렵한 솜씨로 활용한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읽는 것 같다.

  세상은 퇴계를 성리학(性理學)의 거봉으로 받들고 있으나, 필자는 오히려 뛰어난 시인으로 존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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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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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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