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한다. 인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인사는 조직에 활력소가 되고 긴장감을 유지시켜주지만 잘못된 인사는 조직을 썩게 하고,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인사는 최악이다. 조정원 총재의 WTF 출범 이후 인사가 가장 큰 취약점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인사가 망사가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IOC 위원에 대한 뇌물 스캔들과 전자호구업체와의 소송 등으로 WTF가 국제 스포츠계에서 조롱거리가 된 사태는 잘못된 인사가 낳은 인재(人災)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조 총재의 WTF 출범 이후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 직원 인사 때마다 인물 선정에 대해 태권도계의 시비가 적지 않았다. 태권도인들은 이를 무시한 경희대 출신 중심의 폐쇄적인 인사가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한다.

WTF의 상근 임원과 사무처 직원들의 면면을 보면 총재, 사무총장, 국제담당 차장, 마케팅 담당 사무차장, 경기담당 과장 등 핵심 요직이 모두 경희대 출신들로 채워졌다. 이처럼 총재와 인연을 가진 정실인사에 따른 내부 기강 해이가 지금과 같은 사태를 야기한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임명직 부총재와 집행위원 선임을 보더라도 사무처 직원 인사와 다를 게 없다. IOC 위원이자 올림픽 프로그램위원인 낫 인드라파나를 부총재에서 제외시킨 것은 태권도로서는 막대한 손해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총재 선거에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조 총재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그를 품을 수 있는 가슴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대한태권도협회(KTA) 홍준표 회장이 선거 이후 경쟁 후보와 그 세력을 끌어안은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WTF에는 국제스포츠계에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거의 없다. 경기규칙 개정이나 기술에 관한 연구 등은 기술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굳이 집행위원회를 태권도인으로 다 채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신중치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집행위원 선임으로 국제스포츠계에서 태권도를 지원해줄 만한 인사들을 유치하지 못했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무처 직원 인사로 결과적으로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에 위기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퇴출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정식종목 선정 때도 어김없이 태권도의 퇴출이 거론됐다. 결국 WTF가 2005년 4월 IOC에 ‘WTF 개혁방안'을 제시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올림픽 잔류에 성공했다. 당시 개혁방안에는 WTF의 재정 투명성 확보와 사무처 국제화·전문화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6년 반이 흐른 지금 WTF 국제화·전문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스포츠연맹에 걸맞은 사무처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올림픽 정식종목 평가에서 마케팅과 TV 등 미디어 노출을 통한 수익금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유도, 레슬링 등 유사종목들 가운데 방송 노출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입장권 판매량은 26개 종목 중 23위, 방송 노출도는 22위에 그쳤다. 이것 또한 마케팅, TV 등 미디어 노출 전문가를 고려하지 않은 인사 때문이다. 외국인 채용 비율을 제고하겠다던 조 총재의 모습은 지금껏 전혀 찾아볼 수 없다. 
 
IOC 위원 뇌물 스캔들과 전자호구업체와의 소송에 대해 사무총장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조 총재에게 인사개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까. 경희대 출신 중심의 폐쇄적인 인사는 조 총재에게 과잉충성은 가능하겠지만 자칫 업무처리에 투명하지 못한 조직이 돼 부메랑처럼 조 총재에게 그 역효과가 돌아갈지도 모른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와 WTF의 발전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충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무처에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을 기용해야 한다. 집행위원에도 IOC 위원이나 국제스포츠계에 영향력 있는 인사를 위촉해 태권도 홍보를 강화하고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태권도계의 고언을 곰곰이 되새겨야 한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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