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199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2000년 시드니에서 정식종목으로 역사적인 첫 올림픽 대회를 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권도계는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김운용이라는 국제스포츠계의 거목이 버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경기규칙 개정과 판정 시비를 줄일 수 있는 전자호구 도입 등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2004년 김운용 전 총재가 태권도계 지휘에서 물러났다. 와중에 우리 문화의 대표 브랜드 태권도의 위상이 위태롭다고 외신들은 떠들어댔고, 올림픽 진입을 노리고 있던 우슈와 가라테는 태권도 대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진입하려고 맹렬한 로비를 펼쳤다. 태권도 정식종목 잔류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당장 김 전 총재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태권도 지휘권을 독점하며 2인자를 키우지 않은 김 전 총재 탓도 크지만 이에 대비하지 못한 정부와 태권도계의 책임도 컸다. 김 전 총재의 영향을 받아온 적지 않은 수의 친한(親韓) IOC 위원들과 관계를 유지할 만한 적합한 인물을 길렀어야 했다.
김 전 총재가 떠난 후 더 이상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고 판단한 태권도계는 2개월여 만에 선거를 치르고 조정원 당시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총재로 맞아들였다.
신임 조 총재는 ‘WTF본부 신축, 태권도사관학교 설립 등 굵직한 공약을 내놓으며 태권도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후 7년이 가도록 조 총재 자신이 발표한 공약 이행은커녕 IOC 위원 뇌물 스캔들로 IOC로부터 경고를 받아 WTF는 부도덕한 단체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일관성 없는 전자호구 정책과 기본적인 행정처리의 미숙으로 업체로부터 예금자산 40억원을 가압류당하는 등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인사관리와 스포츠외교면에서도 친한 IOC 위원들과의 관계유지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내쫓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경희대 출신 중심의 폐쇄적인 인사, 그리고 낫 인드라파나(태국, IOC 위원), 박수남 전 부총재 등 김 전 총재와 가까웠던 인사들과의 갈등과 반목은 국내외에 WTF, 나아가 태권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는 빌미가 돼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WTF의 위기는 곧 태권도의 위기,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의 위기를 의미한다. 때문에 현 WTF의 체제로는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IOC는 2020년부터 올림픽대회를 핵심종목 25개로 축소 개최하고 대회 때마다 3개 이내의 추가종목을 선정할 방침이다. 만약 25개 종목 안에 들지 못할 경우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태권도계는 2020년의 올림픽 정식종목이 결정되는 2013년까지 IOC가 수긍할 만한 능려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중요한 시점에도 WTF는 쟁송에 휘말려 있다. 태권도신문은 대회 때마다 드러나는 전자호구의 숱한 오류들을 지적하면서 WTF가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그러나 WTF는 귀를 막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대책 없이 저지른 전자호구 변경으로 법정에서 도리어 업체에 끌려다니는 게 WTF의 행정의 실상이다.
태권도가, WTF가 IOC와 국제스포츠계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대대적인 인사개혁과 행정쇄신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게 태권도계의 여론이다. WTF의 현 집행부와 사무처의 무능을 비판함으로써 태권도의 올림픽 입지를 더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두어서는 그야말로 태권도인들의 모든 노력과 꿈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지울 수 없다. 시간이 없다. 늦기 전에 WTF를 쇄신하고 태권도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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