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신문 창간 16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 김운용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늦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가을 공기가 느껴지던 지난 19일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찾아 서울 여의도 라이프오피스텔을 방문했다.

2년 전과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김 전 총재는 여전히 정정했고 표정, 손짓까지도 똑같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앞에 흐트러짐 없이 앉은 모습이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한 가지만은 달라져 있었다. 태권도계에 대해 더 강렬해진 비판과 충고였다. 한 시간 남짓한 대담 내내 “올림픽에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모습에서 태권도에 쏟아부었던 그의 열정과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김운용 전 총재

-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해 보이십니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십니까?

“신경 쓰고 괴롭히는 사람 없으니 마음은 편하다. 요즘은 대학 강의 나가고, 글 쓰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 법정법인으로 변경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의 국기원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몫을 못하고 있다. 국기원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기원은 태권도의 근간이고 뿌리다. 대한태권도협회(KTA)와 세계태권도연맹(WTF)은 그곳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기원은 무도 태권도의 총본산으로서 사범 교육, 승단 심사 등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대한태권도협회와 세계태권도연맹에 협조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세 기구의 관계가 삼위일체로 잘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라 안타깝다.” 

- 정부와 태권도의 관계 설정도 애매합니다.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국기원을 접수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단체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존중하고 지원해주는 곳이 바로 정부다. 직접 임명, 파면하고 사람 앉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니다. 태권도 모르는 친구들이 이사들 사표를 받고, 없는 자리 만들어 월급 주고… 스포츠계는 봉사하는 곳이다. 밥 먹고 사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졌어도 지금 같은 모습은 잘못 된 것이다.” 

- 태권도공원 건립기관인 태권도진흥재단이 업무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권도진흥재단은 집짓는 것이나 하면 되지, 타 단체가 하는 일에 기웃거리면 안 된다. 재단은 그런 능력도 없고 경륜도 경험도 없다.”

- 그럼 공원 건립 후 재단은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까?

“정부가 자꾸 일거리 만들어서 이놈저놈 일자리 주는데 없어지겠나?　오히려 국기원을 그곳에서 흡수하려 하지 않나? 유인촌 전 장관이 국기원 방문 당시 ‘낙후된 도장’으로 표현했다고 들었다. 국기원이 어떻게 서고 발전했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대회, 피수(FISU), 시즘(CISM) 대회 등을 국기원에서 다 치렀고 수백만 명이 그곳에서 승단했다. 1988 서울 올림픽 준비기간에는 IOC 위원장을 포함한 수십 명의 IOC 위원이 방문해 극찬한 성스러운 곳이다. 국기원은 그런 과정을 거쳤다. 전통과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 곳이다. 지켜나가야 한다."

- 태권도공원이 지어지면 관광객이 많이 찾을까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32조원의 관광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획도 비웃음을 사고 있다.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태권도대학 설립됐더라면 지도자 양성 외
  경기규칙 연구, 전자호구 개발도 됐을 텐데
 
- 재임 기간에 꼭 이루고 싶었던 일이 있었습니까?

“교육기관을 만들어 태권도가 국제 무도 스포츠로 설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고 싶었다. 당시 태권도 지도자는 자질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예비 강습을 개설하고 교육 과정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미흡했다. 내가 생각한 교육기관은 지금의 연수원 개념은 아니다. 태권도 대학을 말하는 것이다.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세 개의 단체와 함께 태권도대학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심도 있는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고, 최고의 기술이 만들어지는 그런 대학이 존재했다면 지금 전자호구에 대한 문제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국내외 활동으로 바빴다. 국내에서는 관과 형을 통합하고 단체를 만들어 심사에 대한 부분을 정리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많은 태권도 사범들과 함께 올림픽 진입을 위해 정신없이 달렸다. 사실 서양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IOC에서 그것도 정상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다. 태권도 대학에 대한 필요성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실현시키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태권도의 내실을 다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태권도신문 창간 16주년을 맞아 대담을 하고 있는 김창완 편집국장(왼쪽)과 김운용 전 총재

- 태권도의 국제화, 세계화는 물론 올림픽에까지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한 원로의 입장에서 앞으로 태권도계에 필요한 것을 조언하신다면?
 
“난 그곳을 떠난 사람인데…(웃음). 지금으로선 올림픽에 남는 것이 급선무다. 그곳에서 쫓겨나면 들어가지 않았던 것만 못하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포함된 것은 여러 가지 노력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타 종목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갔다면 빨리 자리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가장 중요한 것이 올림픽 잔류다.

유스올림픽 등에서의 IOC 호평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뿐이다. 나도 IOC에 몸담고 있을 당시 타 종목 경기에 대해 그렇게 고무적으로 말했었다.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실제 IOC 내부에서 들리는 얘기는 부정적이다. 과거와 같이 가라테, 우슈 등 올림픽 밖에 있는 유사종목들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육상, 수영과 같은 올림픽 내 인기종목과 자리다툼을 해야 한다.

최근 베이징, 베트남, 경주 등 굵직한 국제태권도대회에서 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들었다. 또 과거 뇌물 스캔들로 인해 IOC 윤리위원회에서 경고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올림픽 종목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IOC 윤리위원회가 사법기관이 아니지만 이런 경고가 모두 올림픽 종목 선정에 참고 자료가 된다.” 

- 바깥에서 바라보는 태권도계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나름 잘하고 있지만 충분히 좀 더 잘할 수 있다. 지금 태권도 이미지는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다. 올림픽에 남고, 태권도 얼이 지켜지고, 사범들이 더 발전하게 되려면, 또 세계 선망의 대상으로 태권도를 바로 세우려면 할 일이 많다고 본다.”

- 최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대륙연맹의 비활성화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륙연맹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WTF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WTF는 비전과 목표가 명확했고, 이를 위해 실적을 올리면서 빠르게 달렸다. 대륙연맹은 물론 각 국가협회도 존경심을 갖고 따라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대륙연맹이 활성화되면 대륙게임 등 통해 태권도 보급, 경기력 향상, 공정한 경기, 관중 동원, 미디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각 대륙 및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지위가 향상되면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

  국기원은 태권도 뿌리, 세 기구가 삼위일체돼야
  진흥재단은 공원 조성 외 기웃거리면 안돼

- 태권도 4개 단체 간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과거처럼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각 단체들의 내면적인 불화에 각 단체를 정부가 잘못 이끌기 때문이다. 큰 정리가 필요하지만 인적 구성이나 여러 면에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 단체가 제 기능을 잘 이행하며 상호 협조하고 정부는 간섭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단체들을 잘 지원해줘야 한다.”

- 그래도 국기원과 세계연맹이 지금까지 잘 한 것도 있지 않습니까?

“(한참을 생각한 뒤) 지금 국기원과 세계연맹을 제대로 유지한 것은 잘 한 것이다.(웃음)”

- 태권도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태권도 발전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태권도 지도자 전부가 각자 자리를 지키면서 힘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태권도계가 바로 설 수 있다.”

- 올해 태권도신문이 창간 16주년을 맞았습니다. 

“신문은 소식도 전하지만 흐름도 끌고 가야 한다. 태권도계 첫 번째 전문지였던 태권도신문은 태권도 소식 전달과 역사, 교육, 전통 등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태권도 소식 전달과 함께 태권도 발전의 흐름을 잘 유도했으면 좋겠다. 태권도가 갈 길, 흐름을 끌고 가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본다.”

대담=김창완 편집국장
정리=신병주 차장

대담=김창완 편집국장,정리=신병주 차장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담=김창완 편집국장,정리=신병주 차장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