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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⑭퇴계 인품과 학덕 느껴져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9.26 09:59
  • 호수 740
  • 댓글 0

[도산서원(陶山書院) -1]

“바바리 코트가 지나가고, 빨강머리 금발머리 젊은 은발도 지나간 난곡동 육교 아래, 한뼘 봄볕에 양보한 염치 있는 찬바람의 쉼터, 염치 있게 사느라 가랑잎 된 손이, 어린 봄나물을 아프지 않게 다듬고 있었다.
 꺼무레한 보자기에 옹크린 세 무더기 쑥 냉이 달래, 찬 바람에도 얌전히 앉아 있는, 어린 봄나물한테 눈길 주는 이 없고, 가랑잎 손만 목도리로 연신 콧물을 닦았다. 무엇이나 소음이 되고 마는 여기를 지나간, 누비 포대기로 아기 업은 중년이 되돌아와, 하루치의 봄을 떨이하자, 육교 밑의 오늘 봄이 다 팔렸다.

 봄나물도 추워 비닐봉지로 들어가고, 건네진 천원짜리 두 장에는, 그네들과 만난 적 없는 이상한 모자 쓴 노인이, 안도의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자, 노루꼬리 햇발도 마음 놓고 돌아섰다.“
(유안진 / 퇴계 선생의 미소)

 천 원짜리 지폐에 초상(肖像)이 그려져 있는 퇴계 이황(李滉). 아, 그렇다. 이번에는 퇴계 선생 차례다. 그 분을 모시고 있는 서원 중의 서원,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가야 한다.

 

   
도산서원 들어가는 길
병산서원이나 도산서원 모두 안동에 있다. 그러나 서로 가깝지 않다. 병산서원은 안동의 서쪽 끝, 진주 같은 하회마을 깊숙한 곳에 단아하게 앉아 있고, 도산서원은 북쪽으로 물길 따라 굽이굽이 들어간 곳에 근엄한 모습으로 은거(隱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과 경찰서, 역(驛)등이 모여 있는 안동시 중심에서 동(東)으로 약간 빗긴 북쪽 방향 3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 와룡면을 지나 도산면에 진입하면 도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문득 나타난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절묘한 물굽이와 좌우의 깔끔한 풍광이 방문객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기대에 부풀게 해준다.

 예안교를 지나 조금 가다 보니 오른쪽에 제법 큰 동네가 매복(埋伏)한 군인들처럼 불쑥 나타나는데 ‘예안’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간판들이 보였다. 잠시 빌려타고 가던 차를 급하게 우회전, 제법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 동네로 들어갔다.

 때는 마침 점심시간. 마을의 남쪽 골목길 안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소박한 식당에 들렀다. 그 유명한 ‘간고등어’ 백반을 시켰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맛이 좋았다.

 식사하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퇴계 선생에 관해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워낙 바쁜 것 같아 단념하고 말았다. 가지고 있는 자료들에 의하면 퇴계는 1501년 11월 25일(음력)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출생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속으로 ‘이 마을에서 퇴계 선생이 자라고 젊은 시절을 보내셨나?’ 생각하면서 제법 경건한 자세를 가져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퇴계의 향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외관상 집들이 전혀 고풍(古風)을 흘리고 있지 않았으며 어쩐지 경박해 보였다. 길거리 평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치기에 열중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남녀들의 모습이 그런 느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알아본즉 이곳은 기대했던 곳 예안과 상관없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도산면 서부리’. 예안장터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조성한 새터였다.

 35번 국도와 헤어져 오른쪽으로 빠져들어가는 도산서원 길은 깔끔했다.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차도(車道)와 인도(人道)를 구분하는 흰색 선이 선명하여 정갈한 느낌을 받았다.

 서원 길로 들어서면서 차에서 내려 걸었다. 서원까지 2km쯤 된다고 하는데 좋은 경치를 구경하며 걸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먼 것 같지는 않았다. 걷는 일에는 이제 어느 정도 이골이 나서 가볍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존경하는 퇴계 선생을 뵈러 가는데 차를 타고 불쑥 들어가는 게 어쩐지 건방져 보여서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산허리를 깎아 낸 길. 왼편은 청단풍이 지배하는 언덕이요, 오른편은 소나무를 포함한 큰키나무들이 숲을 이룬 채 아래로 내려뻗은 가풀막.

 한참을 들어가니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관리사무소도 있다.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어디서 나타났는지 늘씬한 아가씨가 다가와 주차비를 징수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어른 2명에 3천원이라고 입장권에 찍힌 걸 보니 1인당 1천5백원. 입장권의 일련번호가 엄청나다. 00111051800018.

   
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 강물은 짙은 초록색이다.
시간은 오후 12시 42분 19초. 모든 것이 무료인 다른 서원들과는 초입부터 벌써 무게가 틀리다. 거기서부터는 포장이 안 된 맨땅 길. 몇 백 미터를 더 들어가야 드디어 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퇴계 선생 다니시던 길
 어디 가 찾으리요
 낙동강인가 안동호인가
 숲과 들판의 푸르름이
 더위를 식히려고 물 속으로 숨었는지
 물색은 진초록의 옥빛깔

 선생의 고결한 인품 발자국
 ‘해동주자(海東朱子)’ 일컬음 오히려 부끄런
 높디높은 학덕의 숨결
 매화향 담뿍 밴 정다운 체취
 구슬처럼 알알이 담겨 있을 옛길이사 
 그 물 속 깊이 수장(水葬)되었다네

 차라리 잘되었다 아쉬워 말라
 역사의 더러운 발길과
 탐욕과 천박(淺薄)함의 숨결에
 짓밟히고 오염되지 않게
 옥색 수장고(收藏庫) 속 고이 누워
 천년만년 정결하게 지켜지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우리가 걸어 들어간 그 길은 퇴계 선생이 다니시던 원래의 길이 아니다. 옛길은 1975년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물 속에 잠겼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깊이 잠겨 걷는 사이, 이윽고 서원 앞! 천연대(天淵臺) 운영대(雲影臺)가 나타나고 저 멀리 시사단(試士壇)이 보인다. 아, 여기가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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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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