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과 지난 6일 끝난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40년 이상 지켜온 종합우승을 내주는 등 잇달아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대한태권도협회(KTA) 양진방 사무총장이 지난 9일 사표를 냈다. 사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홍준표 회장은 지난 18일 회장단 간담회에서 양 총장 사표 수리를 기정사실화했을 뿐만 아니라 부회장들에게도 사표제출을 요구했다. 또 즉석에서 김무천 운영부장에게 KTA 개혁추진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겨 일주일 안에 개혁방안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회장단 간담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양 총장의 사표 수리 여부가 논의에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게 태권도계의 예상이었으나 결국 강도 높은 개혁을 지시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홍 회장의 부회장들에 대한 사표 요구에 참석했던 부회장들은 물론 태권도계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16일 각 시도협회 전무이사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성적 부진이 양 총장만의 잘못이 아니라 태권도계 전체가 책임을 통감해야 할 문제인 만큼 사표 반려를 간접적으로 주문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적부진으로 인한 사태가 갈수록 확산되자 홍 회장의 조치가 무리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견의 핵심은 양 총장과 부회장들의 사퇴만으로 성적 부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주국이라는 자만심으로 버텨온 국내 태권도계의 대오각성, 세계 태권도의 흐름이나 세계연맹의 조치와는 엇박자를 보여온 KTA의 대대적인 개혁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2001년 제주 세계선수권대회부터 한국 선수들과 외국 선수들의 기량의 평준화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위기의식을 느낀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전임코치제와 대표팀 상시운영체제를 요구해왔지만 KTA는 이런 주장을 묵살해왔다. 이에 대해 KTA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KTA가 더 이상 고집만 부려서 될 일이 아니다. 경기규칙 등에서 국제대회를 관장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 룰을 따라가야 한다. 전자호구만 해도 그렇다. 모든 나라가 라저스트를 사용할 때 KTA는 전혀 다른 호구를 사용해 대표선수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선수의 선발방식이나 코팅스태프의 선임과 역할 분담, 훈련 관리와 지원 등 KTA의 대표팀 운영은 타 종목과 비교해도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이번 경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든 태권도인들이 지켜본 결과 외국선수들의 기량이 한국선수들을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 태권도인은 “외국선수들의 기량을 볼 때 이제 한국팀이 국제대회에서 종합우승은커녕 금메달 따기도 그리 쉽지가 않게 됐다. 성적이 부진할 때마다 임원들이 사표를 내야 한다면 국제대회 한 번 끝날 때마다 임원이 바뀌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제에 잘못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려처럼 국제대회가 끝날 때마다 KTA는 책임을 묻고 임원을 바꾸며 사후약방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나눠먹기식 코치 선임 더 이상 안 돼
감독직 시도협회 전무 안배도 배격해야
책임회피성 나눠먹기식 코치 선임.’
KTA가 국가대표 코치를 선임할 때마다 매번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다. 코치를 선임한 KTA조차도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KTA 스스로 능력이 부족한 코치를 선임했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코치의 능력을 믿지 못해 코트 밖에서 무전기로 작전을 지시하다 발각돼 종주국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경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KTA가 선임한 국가대표 코치들이 세컨드석에 앉아 제 역할을 못해 관중석과 코트 주변에 포진한 소속팀 코치들이 코트의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KTA 일정에 따라 국가대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간은 겨우 달포 정도. 그러니 선수들은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보다 자신을 국가대표로 성장시켜준 소속팀 코치를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헛점을 이용해 소속팀 코치들이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무시하고 ‘사이드 세컨드’를 대놓고 보기도 한다. 선수가 우선 좋은 성적을 내야 하니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들도 KTA도 이를 저지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태권도인들은 국가대표 코칭스태프가 왜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영상판독 신청카드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의 판단이 아닌 소속팀 코치의 수신호에 의해 이뤄질까. 문제를 해소하는 답안은 현장감을 갖춘 능력 있는 지도자를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로 제대로 선발해 소속팀 코치가 감히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KTA는 지금껏 줄기차게 책임회피성 코치를 선임해왔다. 국가대표선수를 많이 배출한 팀에 우선권을 부여하되 그 팀이 알아서 인선토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국가대표 코치가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팀 지도자들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그들대로 나눠먹기식으로 안배하고 마는 것이다.
선수들 훈련에는 뒷전이던 지도자, 현장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도자, 국내대회에서 조차 세컨드석에 앉아보지 않은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그 팀의 훈련을 주도하는 코치가 누구인지는 KTA도 잘 알고 있다. KTA는 책임을 지고 유능한 지도자를 선택, 대표팀 훈련에 대한 권한과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KTA는 지난해 지방협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무이사들에게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참관토록 편의를 제공했다. 그것도 부족해 각종 메이저대회에 감독으로 선임, 유공자로 훈장을 받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선에서 묵묵히 후진양성에 애쓰는 지도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위다. 국가대표팀의 관리체계를 일신하려면 정치적 계산에 의해 시도협회 전무이사들을 대표팀 감독직에 안배하는 처사도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
전임코치에게 전권 부여해야
새 대표팀운영체계 따른 지원 필수적
지난해 11월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자 뒤늦게 위기를 감지한 대한태권도협회(KTA)는 지난 3월 김세혁 전 삼성에스원 감독을 전임코치로 선임하고 선수촌 상시운영체제를 시행토록 했다. 그러나 처음 도입한 대표관리 시스템이어서 그런지 전임코치제의 운영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경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대표선수들과 이들을 지도할 코치들, 그리고 김세혁 전임코치는 지난 3월 21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참으로 애매했다는 후문이다. 김세혁 전임코치에게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하는 선수들을 훈련시킬 코치 선임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KTA가 전임코치와는 아무 상관없이 별도로 임명했다. 이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입촌 후 전임코치가 한 역할이라곤 훈련계획서를 짜서 코치들에게 자료를 제공한 것 외에 별 게 없었다. 전임코치였지만 어떤 확실한 임무도 주어지지 않았다. 전임코치가 선수촌에서 대표선수단 프런트 역할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적이 부진했지만 그 책임을 전임코치에게 물을 수도 없게 됐다. 책임은 고스란히 사무총장. 그리고 부회장들에게까지 돌아갔다. 어정쩡한 대표팀 관리와 지원체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런던 올림픽이 2012년 7월 27일부터 시작된다. 1년 남짓밖에 안 남았다. 전임코치를 선임했으면 그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코치 선임은 물론 훈련계획 일체가 그의 관리 하에 일사분란하게 이뤄져야 한다. 훈련 상대, 전지훈련 일정과 장소 선택은 물론이다.
진정한 경기력 향상, 올림픽과 각종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을 원한다면 협회 일부 인사들의 탁상공론을 멈추고 대표팀에 대한 영향력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표팀 상시 훈련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운영예산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국가대표 코치를 지냈던 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표팀 훈련에 필요한 예산을 각 시도협회와 일부 팀에서 내놓는 격려금으로 충당하느라 힘들었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나마 격려금도 대회가 임박해야 나오는 예측불가의 돈이다.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 중 세 번째 큰 규모의 조직이자 종주국을 자부하는 대한태권도협회가 대표팀 운영에 필요한 자체 예산을 충실히 편성하지 않았는다는 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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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태권도연맹 강미르 올림픽 출전 불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