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승단(품) 심사 문제가 태권도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기원이 오랫동안 고유의 심사권한을 원칙 없이 위임하고, 위임받은 단체들이 심사권한을 잘못 행사해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승단(품) 심사 질서가 문란해지다 보니 이제는 심사권의 위임 자체가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에선 “국기원이 대한태권도협회(KTA)를 비롯한 일부 국가협회로만 한정하지 말고 모든 국가협회와 일관된 심사 위임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각 국가협회나 대륙연맹이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는 자체 단증 발급 소리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선 국기원이 아예 자세 심사위원들을 선임해 철저히 교육시키고 심사현장에 직접 감독관과 심사위원들을 파견한다면 승단(품) 심사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해 6월 국기원이 재단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승단(품) 심사권한 위임 재계약을 어떠한 국가협회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단법인 때의 심사권한 위임 계약이 준용되고 있다.

그러나 국기원과 KTA 간에 체결된 승단(품) 심사 위임계약의 핵심내용을 살펴보면 두 단체 간에 지켜야 할 내용만 나열돼 있지, 심사 진행에 따른 매뉴얼은 한 줄도 없다.

승단(품) 심사 위임계약 핵심 사항을 보면 △1~4품, 1~5단 심사는 KTA에 위임한다. △단증발급에 대한 수수료는 국기원이 정하고, 승단(품) 심사를 진행하는데 발생하는 시행수수료는 KTA 정하고 국기원이 승인한다. △KTA와 16개 시도협회 사이의 승단(품) 심사 위임계약은 국기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각 시도협회가 소속 시, 군협회와 승단(품) 심사 위임계약을 할 경우 국기원에 보고해야 한다. △KTA(시도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비회원 도장에서 승단(품) 심사를 요청할 경우 그에 응하고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증에 명기할 내용이 있을 경우 KTA가 요구하면 국기원이 수용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달랑 A4 용지 2장으로 돼 있다.
 
당장 국내 각 시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심사 관련 시비와 혼란을 일소하기 위해서 우선 심사권한 위임 계약에 앞서 구체적인 심사 매뉴얼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일 일고 있다. 현재의 승단(품) 심사제도는 소비자의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으로 돼 있다.

운전면허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기를 다 통과해야 한다. 합격할 수 있는 기준 점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승단(품) 심사도 문제은행을 만들어 문제를 출제하고,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등 심사 과목 부문별 합격기준 점수를 정해 그 이상 점수가 나올 경우 합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정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합격?불합격이 결정되고 있다. 심사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타 시도로 심사가 유출되고 있는 핵심적 이유다.
 
또한 승단(품) 심사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교육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각 시도협회의 운영방식에 따라 2~3천명이 하루에 심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심사에서 응심자 1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2~30초에 불과하다. 어린 자식들이 그동안 연마한 태권도 실력을 지켜보기 위해 심사장을 찾은 학부모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태권도 승단(품) 심사장을 교육의 장으로 여기고 있지도 않다.

국기원 이근창 사무처장은 “심사 매뉴얼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 승단(품) 심사에 대한 말썽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국기원과 KTA는 단증 발급 및 승단(품) 심사진행에 따른 시행수수료만 챙길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염두에 둔 심사 매뉴얼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창완 기자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