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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잘한 선수’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오혜리-김소희-김태훈...치열했던 도전의 시간들

우리는 알고 있다. 스포츠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최강자의 전성기도 언젠가는 막을 내린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오래 잘하는 선수’다. 황경선(중국 베이징대 코치), 차동민(아일랜드 해외파견사범)이 그렇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는 또 다른 ‘오래 잘한 선수’들이 정상에서 물러서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들...험난한 태권도 겨루기 경기판에서 두 다리를 굳게 뿌리 내리고, ‘오래 잘한 선수’로 기억될 그들의 이야기다.

2인자에서 1인자로...‘밝은 언니’ 오혜리가 떠난다

강릉 출신의 오혜리(춘천시청). 관동중, 강원체고를 거치며 경기력을 인정받은 오혜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평가전 2위자 자격으로, 파트너로 태릉선수촌에 첫 짐을 풀었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체대 선배 황경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절치부심했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은 부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혜리.

2011년 경주세계선수권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오혜리는 4년이 지난 첼랴빈스크세계선수권서 여자 –73kg급 세계 최정상에 오른다.

탄력을 받은 그의 기세는 그해 세계태권도연맹(WT) 그랑프리시리즈로 이어졌고, 2015년 12월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서 여자 –67kg급서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을 획득했다.

‘반드시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수촌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8년 만에 그렇게 지켜졌다.

2016년 8월 20일(현지시각), 오혜리는 ‘빠샤’라는 기합과 함께 여자부 전 경기를 통틀어 가장 멋들어진 경기로 브라질 리우 까리오까 아레나Ⅲ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더 이상 2인자가 아닌 1인자로 최강의 호칭을 거머쥐었다.

정점에 섰지만 오혜리는 만족하지 않았다. 2016 바쿠서 그랑프리파이널 첫 정상, 2017년 무주 세계선수권 국가대표로 세 번째 세계선수권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년까지 그랑프리에서 2,3위로 꾸준히 입상하며 올림픽랭킹 수위를 지켰지만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오혜리는 좀처럼 전성기의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세월의 흐름은 더 이상 노장의 질주를 허락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32세의 나이로 지난해 12월 도쿄올림픽 자동출전권 획득 순위에서 비켜서며 길고 길었던 레이스의 종지부를 찍었다.

항상 밝았던 오혜리. 그랑프리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향한 오혜리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의기소침한 후배들을 향해 기운찬 목소리로 “언니가 내일 금메달 따서 해결할게”라며 사기를 북돋을 만큼 긍정적이고, 밝은 언니였다.

그러나 리우올림픽을 앞둔 파리 전지훈련에서는 불안한 마음에 후배 앞에서 눈물을 쏟을 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간절하고 치열하게 도전한 선수였다.  

오혜리는 올해 2월 차의과학대학원에서 스포츠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한다. 당분간 소속팀 춘천시청에서 그동안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 미안한 마음이 컸던 후배들을 챙길 계획이다.

‘오래 잘한 선수’ 오혜리의 전성기는 이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오혜리와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행복했다.

굳센 발걸음은 여기까지...‘밀리언 달러 베이비’ 김소희 

삶의 방향을 크게 뒤흔드는 결정적 순간이 있다. 당시에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 그 순간이 결국 자신의 길을 크게 바꿔놓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충북 제천 출신의 김소희(한국가스공사). 제천동중 3학년 때 김소희는 서울대공원에 놀라가자는 엄마의 말에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엄마는 ‘서울 온 김에 서울체고나 들렀다 가자’며 딸의 손을 이끌었다.

김소희.

얼떨떨하게 서울체고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진학을 거절당했다. 

당시 서울체고 박정우 코치가 “졸업 전에 반드시 세계무대에 서게 하겠다”며 감독을 설득해 제천으로 향하던 김소희의 발걸음을 다시 서울로 돌린 그 순간. ‘밀리언 달러 베이비’ 김소희의 경량급 10년 정상 역사가 빼꼼하고 문을 여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세컨드의 ‘출발해’라는 주문이 떨어지면 김소희를 당해 낼 선수는 없었다. 유스올림픽 대표를 거쳐 고교 3학년으로 경주세계선수권 첫 시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돼 선수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2011년 5월 경주세계선수권서 막내로 출전해 여자부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했다. 빠른 스텝과 정통파 몸통 돌려차기, 그리고 여자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물게 화려한 회전공격까지 갖춘 김소희가 여고부,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순간이다.

2013년 푸에블라 세계선수권서 슬럼프를 이겨내고 2연패를 이룬 김소희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드디어 최종 관문인 올림픽을 향한 발걸음을 디뎠다.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자동출전권 획득에 사활을 걸었던 김소희는 2015년 12월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여자 –49kg급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16년 8월 18일, 리우올림픽 여자 –49kg급서 김소희는 태국의 패니팍 웅파타나키트와 프랑스의 야스미나 아지에즈, 그리고 세르비아의 티자나 보그다노비치를 연달아 격파하고 보란 듯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에도 김소희는 2017 우시 월드그랜드슬램 우승, 2018 푸자이라 그랑프리파이널 1위를 거머쥐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올림픽 2회 출전을 향한 김소희의 힘겨운 발걸음은 국내 평가전서 후배에게 패하며 결국 멈춰 섰다. 10년 동안 쌓아온 정상의 자리도 이제는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할 순간에 마주했다.

세계선수권 3회 출전과 2연패, 아시안게임 우승, 올림픽 금메달, 월드그랜드슬램 1위, 그랑프리파이널 정상까지. 황경선 이후 국내 여자선수 중 가장 독보적인 정상의 자리를 지켜 온 김소희의 시간은 이제 역사로 남는다.   

가장 작은 몸으로 가장 큰 기적을 만들어 낸 김소희의 영광은 이제 심재영, 강보라, 강미르, 이예지에게 바통을 넘긴다.

김소희는 소속팀 한국가스공사에서 플레잉코치로서 지도자의 길을 준비할 계획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더 없이 빛나는 태양은 노을로 질 때가 되어야 비로소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는 정상에서 내려오지만 작은 발로 이룬 큰 기적은 노을이 되어 후배들에게 닿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도전... 0순위 김태훈의 시간은 진행형

리우올림픽 독수리 오남매.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차동민, 오혜리, 이대훈(대전시청), 김소희, 김태훈(수원시청).

독수리 오남매 중 막내 김태훈에게는 0순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2013년 푸에블라세계선수권 남자 –54kg급 등장과 함께 올림픽 금메달 0순위에 오른 김태훈.

김태훈.

광복절에 원주에서 태어나 평원중, 강원체고를 거쳐 푸에블라세계선수권 티켓을 들고 동아대로 진학한 김태훈의 경기력은 압도적이었다.

강력한 오른발 압박과 지치지 않는 체력, 타점 높은 머리 공격에 상대 선수들은 속수무책 나가 떨어졌다.

김태훈에게도 난적은 있었다. 이란의 파르잔 아수르 자데 팔라흐. 김태훈은 리우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시티그랑프리파이널을 앞두고 파르잔 공략책을 찾아냈고, 올림픽랭킹 1위 탈환과 함께 파르잔을 침몰시켰다.

김태훈은 약속의 땅 리우올림픽 첫 경기서 패한 후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쉬움에 눈물을 삼키며 2020 도쿄올림픽을 기약했다. 그리고, 김태훈의 기세는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연패. 무주 세계선수권 3연패, 2017 우시월드그랜드슬램 우승, 그랑프리 통산 6회 우승까지 김태훈의 기록은 전세계 남자 경량급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 되었다.

그러나 무섭게 성장해버린 후배 장준에게 도쿄올림픽 평가전서 패하며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이 되어버렸다.

특유의 자부심과 성실함으로 6년 연속 국가대표, 남자 세계 경량급 정상의 자리를 지켜내는 동안 대표팀 막둥이 김태훈은 어느새 대표팀 중견이 되었고, 또 다른 막둥이 장준에게 올림픽의 바통을 넘겨주었다.

김태훈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자신의 말대로 수원시청,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달리고, 또 도전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활하는 김태훈을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막둥이 김태훈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동안 그는 한국 태권도의 자랑이었고, 그에게는 여전히 그 각오와 욕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강하다는 것, 최고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매번 승리한다거나 어떤 상대와 만나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의 자리에 서기 위한 과정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도전하는 치열한 각오를 지닌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수식어다.

밝은 언니 오혜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 김소희, 0순위 김태훈은 그런 치열한 각오를 가슴에 품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오래 잘한 선수’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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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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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V 2020-01-23 22:12:21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27년간 놓지 않고 수련한 태권도가 자랑스러운 밤입니다.   삭제

    • 사막에 전사 2020-01-23 21:22:24

      따뜻하고 멋진글 읽고 또 읽어봅니다. 청춘을 땀과 열정을 받쳐 전사처럼 살아온 어린 후배들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열어주시는 모습이 보기좋네요.
      그들의 열정에 박수와 감사함을 전하며, 아름답게 보내주시는 글에 고마움 전합니다.   삭제

      • 박문식 2020-01-23 10:03:33

        강한자가 살아남는것이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하다는 글이 생각나는군요?
        양기장님의 붓끝이 자라나는 태권도 꿈나무들에게 삶에대한 목표와 인생의 좌표 설정에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라 박수를 보냅니다.

        영원할 수 없지만 끝까지 포기를 모르는 열정이야 말로 누구나 이루어야할 염원이란것을 3명의 선수들을 통해 굴곡많았던 시절 헤쳐나온 내용을 깊게 새계주시어 감명 깊게 읽어 습니다.

        앞으로도 태권도신문에 이 같은 훈풍같은 기사로 태권도 전반을 두루 살피시어, 태권도 문화에 감명을 주고 발전에 기여할 기사들 기대합니다.
        감사!   삭제

        • 미소나지 2020-01-23 09:47:28

          그들의 노고를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네요. 멋진 기사입니다.   삭제

          • 태권사랑 2020-01-23 08:20:08

            아침부터 가슴찡한 기사내용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서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지~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것~ 후배들도 선배들의 도전정신 본받아 목표와 꿈을 이룰때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오혜리.김소희 언니 더 멋지게 제2의 인생을 위해 비상하시기 바랍니다.
            김태훈 선수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것입니다.
            모두 모두 화이팅!입니다.
            태권도 후배들 위해서도 힘써주세요~^^   삭제

            • 베스트 뉴스 2020-01-23 00:37:13

              기사 너무 좋습니다.
              세명의 선수 모두 응원합니다!   삭제

              • 태권도인 2020-01-23 00:33:18

                모처럼 태권도 신문에서 너무나 좋은 글을 봤네요
                선수들 항상 응원합니다!!!!   삭제

                • 맹감독 2020-01-23 00:05:06

                  기사 참좋네요 김태훈선수는 다시 장준선수와 경쟁할수있었으면 좋겠고 오혜리선수 김소희선수처럼 전설적인 선수들이 많이나와 양기자님이 다시금 좋은 기사 내시면 좋겠네요~^^   삭제

                  • 응원합니다 2020-01-22 23:20:53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세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세 선수들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삭제

                    • 이광진 2020-01-22 21:47:29

                      택진기자!이런 글들이 자주 올라왔으면 좋겠다. 멍절 잘 보내시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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