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10년 수련, 사법시험도 거뜬

태권도 10년 수련, 사법시험도 거뜬이화여대 3학년 허수진 씨

박성진 기자
승인 2009.01.15 18:03
호수 623
댓글 0

요즘은 사법시험 한 회의 합격자 수가 1천명을 넘는다.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재들이 지원하는 시험으로는 사법시험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사법시험 패스’라는 말은 곧 입신양명의 지름길에 들어섰다는 말과 크게 다름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28일 발표된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는 한 사람의 젊은 태권도인의 이름이 끼어 있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문 현실에서 1천여 명의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태권도 수련 경험자가 어디 한두 명일까만은 유단자, 그것도 ‘골수’ 태권도인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화제의 주인공은 현재 이화여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허수진(24) 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10년 이상을 꾸준히 태권도를 수련해 공인 4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허 씨가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보통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체력을 생각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 태권도장에 보내다가 고학년이 되면 공부에 집중하라는 마음에서 태권도장을 그만 다니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허 씨의 경우에는 본인이 먼저 태권도장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반대를 하다가 기대하는 정도의 성적을 받아올 경우 그 상으로 다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허 씨는 거뜬히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그 후로 10년이 넘게 한 태권도장(서울 잠원동 한국체대웅비태권도장, 관장 이우영)을 다닌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학업 경쟁이 심한 서울 강남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혹여 태권도를 수련하는 시간에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을까?

“시험 때면 오히려 도장에 더 잘 나갔어요. 도장에서 후회한 적이 있긴 하죠. 힘들어서. 편하게 공부나 할 걸 그랬나 하면서 말이예요.”

허 씨가 이렇게 열심히 도장에 다니게 된 데는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춥다고 안 오면 안 된다’는 이우영 관장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웅비태권도장 출신 중에는 허 씨 외에도 세칭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태권도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한 것이다.

이우영 관장의 말에 따르면 허 씨는 리더십이 강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했었다. 이제 대학 3학년인 허 씨는 1년간 학교를 더 다니고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계획이다. 판사를 희망하고 있다. 판사가 되려는 것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학급에 가상 법원을 도입했다. 학생들 간에 어떤 분쟁이나 갈등이 생긴 경우 이를 학생들로 구성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한 것이다. 허 씨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대부분의 재판에서 이겼다. 그런데, 허 씨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때 우리 반에는 이른바 ‘짱’이라고 불리는 문제아가 있었어요. 저하고는 짝꿍이기도 했지만,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고 해서 기회가 되면 버릇을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지요. 그 짱의 ‘꼬붕’이었던 친구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짱을 고발하고 나선 거예요.”

짱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을 최측근 부하가 배반을 한 것이다. 결과는 누가 봐도 뻔할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이 꼬붕의 변호사로 허 씨가 나선 것이다.

허 씨는 승리를 낙관했으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짱의 잘못보다는 꼬붕의 배신에 대한 반 친구들의 비판이 더 많았다. 선생님까지 나서서 문제를 지적하고 재심을 했지만 배심원들인 학우들은 여전히 짱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가 너무 어이없어서 울음까지 터졌어요. 이 일을 통해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어요.”

사법연수원에서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일정 등수에 들지 못하면 웬만한 대기업에 취직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허 씨의 희망대로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1천여 명의 연수원 동기생 가운데 150등 안에는 들어야 한단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허 씨는 자신이 있다.

“연수원에 들어가면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경쟁도 치열하다고 벌써부터 겁주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재들과 함께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태권도에서도 겨루기는 강자와 붙어야 실력이 늘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강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자는 태권도정신으로 무장한 허 씨가 꼭 훌륭한 판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허 씨와 같은 태권도인들이 우리 사회의 요소 요소에 많으면 많을 수록 태권도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