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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후편(2)축하에 익숙한 제주도 인심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12.12 15:49
  • 호수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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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통계자료를 보았거나, 어떤 권위 있는 논문을 본 것은 아니고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다. 좀 더 소탈하게 말하면 남을 헐뜯는 데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최창신 상임고문.

그러다 보니 남의 경사(慶事)를 진정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일에 익숙할 리가 없다. 오죽하면 옛부터 이르기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촌 형제가 논을 사면 나한테도 득이 됐으면 됐지 손해날 일은 없을 듯싶은데 어째서 배가 아플 정도로 기분이 나쁘게 된단 말인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심보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제주도 인심이다. 이곳에서는 친척이나 친지들의 경사를 아주 확실하게 축하해 주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서귀포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 ‘보목’이라는 동네를 지날 무렵 길가 돌담에 나붙은 플래카드는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한 글을 담고 있었다. 길이 7m쯤 되는 흰색 바탕의 플래카드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어진이네 횟집 이업수 장남 현철민 한라대 총학생회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축하해 주는 사람은 현윤아.

‘어진이네’라는 상호로 횟집을 경영하는 이업수씨(어머니)의 장남 현철민군이 경사를 맞이했고 사촌누이쯤으로 보이는 친척이 원색적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흐뭇하여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남 칭찬하기’ ‘진심으로 남의 경사를 축하하기’ 캠페인을 펼쳐 새로운 사회 기풍을 진작시켜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좀 늦게 서귀포를 출발한 터라 부지런히 길을 줄여 나갔다. 위미(爲美 )를 지날 무렵 일주도로를 벗어나 남쪽 해안선 쪽으로 더 내려가 지방도로를 택했다. 남원(南元)의 중심부로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위미 지역을 벗어날 즈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낙조(落照)와 땅거미 질 무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낙조는 석양(夕陽)일 테니 낙조 바로 다음 현상이 땅거미 지는 타이밍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 무렵의 맥빠진 붉은 색과 어슴프레한 박모(薄暮)의 빛깔은 멀리 집을 떠난 나그네의 심금을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들고 있었다.

수년전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이른바 ‘잡초’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야생초 편지’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황대권은 저녁노을과 감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하루 중 가장 스산할 때가 바로 이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산에 해가 떨어질 때까지의 몇 십분. 아마도 노을빛에는 사람의 심금을 건드리는 특별한 파장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저녁노을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특수한 파장 탓인가, 아니면 정처없는 나그네가 어두움에 휩싸이기 직전에 느끼는 낭패감 때문인가,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지고 있었다. 과연 그랬다. 남원까지만 가면 무슨 살판이라도 나는 것처럼 열심히 걷고는 있지만 사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처지였다. 숙소를 예약하기는커녕, 숙소나 식당에 관한 쓸 만한 정보 하나 없이 무작정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잘 견디고 극복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스스로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담대하게 이겨 내야지. 땅거미가 지는가 싶더니 금세 어두워졌다. 밤이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펀해지고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황대권을 인용한 김에 한 가지만 더 그의 주장을 소개해 보고 싶다. ‘야생초와 문명, 그리고 식습관’이라는 내 나름의 제목을 달아서-.

“기존의 야채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야생초의 풀냄새가 역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싱싱하게 무쳐 낸 야생초의 냄새를 맡아 보고는 어쩌면 야만의 시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그런 풀들을 뜯어 먹고 살았다. 문명이란 그 풀냄새들을 지워 없앤 역사라 할 수 있다. 야채가 그것이지, 야생의 풀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의 미각-작위로서의 문명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해 온-에 맞추어 특정한 맛만을 선택하여 육종 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야채이다.

서귀포 인근‘보목’이라는 동네의 길가 돌담에 나붙은 플래카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입맛을 위하여 원래의 야채가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영양소와 맛을 제거해 버리고 특정의 맛과 영양소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래 놓고 요리할 땐 그 위에 갖은 양념을 다 뿌리고 또 영양분을 보충한다고 각종 비타민제를 따로 먹고 있다. 이것이 문명이다.

야채와 달리 야생초는 자연상태에서 섭취한 영양소와 천지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야생초를 먹게 되면 따로 영양제나 비타민제 따위를 먹을 필요가 없다. 야생초에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온갖 약효가 들어 있어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건강해진다.”

귀담아 들을 만하다. 황대권은 일류대학 농대 출신이고 자신이 야생의 풀들을 직접 먹어 보고 하는 말이다. 약해빠진 풀(야채)들을 온전한 상태로 재배하고, 싱싱한 상태로 내다 팔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농약’ 밖에는 약이 없다. 우리가 즐겨먹는 야채는 그래서 독(毒 ) 덩어리인 셈이다.

최창신 

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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