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파문에 휘말린 대한태권도협회(KTA)가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승부조작 의혹의 한 복판에 있는 임춘길 전무이사가 사표를 낸 데 이어 황춘성 부회장과 양진방 기획이사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 KTA는 성재준 사무국장이 전무이사 직무대행을 맡아 일상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등 협회 운영 정상화에 애를 쓰고 있지만, 승부 조작의 파문은 갈수록 큰 격랑이 되어 KTA를 뒤흔들고 있다.

승부조작 의혹은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속칭 ‘사전 승부조작’ 의혹은 지난달 5, 6일 국기원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출전 한국대표선수 선발전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이 선발전을 유심히 지켜본 하봉갑 KTA 이사는 심판 판정이 특정팀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 임춘길 전무를 찾아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 당시 하 이사는 “편파 판정이 아니라 사전 승부조작에 가깝다”며 김정길 KTA 회장에게 보고하겠다고 시사했다.

문제는 심판 판정이 특정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 이사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부 감독들은 노골적으로 이같은 정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 이사는 지난달 20일 자신이 직접 나서 김세혁 삼성에스원 감독과 류병관 용인대 교수 등 지도자 7명과 함께 김 회장을 만나 심판들의 불공정 판정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관련자에 대한 강력 조치를 요구했다.

김 회장을 만난 직후 한 감독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 회장이 크게 노했다”며 “김 회장의 특별 지시로 진상조사가 시작되면 승부조작과 관련된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혹의 핵심은 임춘길 전무의 승부조작 지시

의혹의 핵심은 임 전무가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받고 승부조작을 지시했느냐 하는 것이다.

임 전무가 사표를 제출하자 일부 태권도인들은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고 승부 조작을 했다는 근거가 드러나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임 전무가 사표를 제출한 배경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감독은 “임 전무가 김 회장을 만나면서 ‘(승부 조작과 관련)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몇몇 사람들은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임 전무가 승부조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승부조작 파문에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임 전무 측근들은 자신들의 연루설을 강하게 반박하며, 임 전무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임 전무의 측근인 한 태권도인은 지난 3일 “심판들을 지켜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판정 오더를 내리겠느냐”, “임 전무는 절대로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는 “임 전무는 경기장에서 한시도 긴장을 풀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공정한 판정을 위해 노력했다”며 “다만 (승부 조작의 혐의를 씌우며) 자신에게 독설을 퍼붓고 음해하는 것에 심신이 지쳐 사표를 내고 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무 측근으로 승부조작 파문에 오르내리고 있는 또 다른 태권도인은 모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근거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로 인해 30년 이상 지켜온 태권도 지휘부가 하루아침에 흔들리고 있다”며 “남의 이야기라고 해서 근거 없이 헛소문을 퍼뜨려선 안 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정길 회장, 6일 대책 발표 예정

김정길 KTA 회장은 지난달 30일 “(자정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으니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뿌리를 뽑을 것”이라며 태권도계 자정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김 회장은 6일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과 해결방안을 밝힐 계획이다. 이 기자회견에서 김 회장은 태권도계 부정척결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불공정 판정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 회장을 만나 이번 파문의 해결방안을 논의한 오승철 KTA 감사는 “곧 태권도인을 배제한 외부 전문가들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승부조작 파문의 진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해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 감사는 “이번 파문의 수습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일선 도장”이라며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을 수면 위로 올려 유리알처럼 맑게 사태를 들여다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김 회장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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