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공연장을 빠져나와 뜨거운 햇볕을 피해 인도 옆에 생긴 그늘을 밟으며 소림사(少林寺)로 향했다. 소림사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을 보며 관광명소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소림사의 문턱을 넘는 순간,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인지 일행들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림사 공연장에서 승려들이 무술을 공연을 하고 있다.

소림사의 경내로 들어가자 경주의 불국사를 연상시킬 만큼 아늑했다.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경내로 들어가다 보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한 구멍이 뚫려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구멍은 승려들이 무술을 연마하면서 생긴 흔적이다.

이 뿐만 아니라 경내를 걷다보면 연공을 해서 패인 바닥도 볼 수 있다. 경내에서 향을 사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편에서는 승려가 향을 팔기 위해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현지 가이드는 입설정(立雪停)에서 발을 멈춰, 얽힌 전설을 들려줬다. 어느 해 겨울, 마흔이나 된 신광이란 스님이 가파른 산을 타고 달마굴을 찾아왔다. 눈이 펄펄 내리는 동굴 밖에서 사흘 밤을 새며 달마대사에게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달마는 냉정하게 거절하며 “하늘에서 붉은색의 눈이 내리면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신광은 그 말을 듣자마자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날리던 눈은 붉게 물들었다. 달마대사는 무모하게 팔을 잘라버린 신광을 제자로 받아 들였다.

신광에게 법명을 내렸는데 바로 혜가선사이다.

입설정은 눈 속에 서 있던 혜가를 기리는 곳이다. 안에는 달마대사 곁에 소매 사이로 팔을 넣은 혜가대사의 입상이 있다. 일행들은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혜가의 입상을 유심히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소매 사이로 혜가선사의 왼팔은 보이지 않았다.

달마대사는 어른 서너 명이 앉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9년 동안 면벽 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면벽은 움직임이 없는 벽과 같이 정신의 동요가 없게 하는 수련 과정이다. 소림사에는 달마대사가 마주 봤다는 동굴의 벽면 바윗돌이 있다.

유리관 속에 보관된 바윗돌에는 달마의 얼굴과 좌선하는 모습의 윤곽이 담겨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의 9년.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달마대사의 그림자가 바위에 물든 것.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야는 좁아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바로 보니 조금씩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로 놀라울 뿐이다.

면벽을 마친 후 신체가 많이 약해진 달마대사는 건강회복을 위한 신체수련을 했다. 스님들의 건강증진과 정신수양, 호신을 위해 행해지던 것이 이후 체계화되고 발전하면서 소림파 무술의 일부가 되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불볕더위를 연상시킬 만큼 후텁지근한 날씨. 황사를 일으키며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아랑곳없다는 듯 야외무대에서 승려들이 무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의 발자취를 한 시간 가량 둘러봤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걷는 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벅차다. 하지만 급하게 돌아봤기 때문인지 부푼 기대를 안고 간 나에게 소림사는 무술의 본 고장이라기보다는 관광지일 뿐이었다.

중국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소림사는 무술의 본고장이라는 엄격함도, 선종의 발원지라는 경건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끝

김령선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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