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일어나! 준호야.”
“1점만 더. 물러서지마!”
수백 명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이 A코트를 뜨겁게 달군다.
“우와! 들어갔다!”

지난 14일 단국대 병원에서 태권도 신문에 실린 자신의 기사를 보고 있는 고준호 선수.

종료 10초전, 얼굴 내려찍기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은 광적으로 환호한다.

지난 달 28일 국기원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7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 라이트급 결승. 마지막 일발로 스코어는 10 대 6으로 벌어졌다. 경기 종료의 부자가 울리는 순간 코트에서 뛰어나온 선수, 마주 달려간 코치(이종선)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두 사람은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으로 그 동안의 설움을 날려버렸다. 그들의 노고를 알고 있다는 듯 주위를 둘러싼 수십 명이 기쁨의 눈물을 함께 뿌렸다.

고준호가 단국대 선수로는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태권도 종주국의 국가대표로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3년 전 대학 문턱도 가보지 못할 절망적 상황에서 자신에게 입학의 길을 열어준 모교에 작은 보답을 안긴 날이기도 했다.

여섯 살 때 처음 윗집 형이 태권도하는 모습에 이끌려 운동을 시작했다. 성남 수정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태권도선수로 등록, 성남서중으로 진학해서는 경기도 대회에서만 몇 차례 메달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어렵게 풍생고에 진학하던 해에 대통령기 3위, 이듬해 대통령기 2위, 경희대총장기 3위. 전국대회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항상 간발의 차로 주저앉아 늘 1인자의 그늘에 가린 한 맺힌 시절을 보내야했다.

“전국대회 금메달 정도는 있어야 데려오지”라는 대학팀이나 실업팀 관계자들의 말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 신음만 흘렸을 뿐 태권도선수로서의 꿈은 그대로 무너지는 듯했다.

“같은 고등학교 친한 친구 세 명 모두 H대로 스카우트되고 저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어요”라며 그는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고난이 가여워 하늘에서 천사를 보냈던 것일까? 좌절의 늪에 빠져있던 그를 단국대 태권도학과장인 김영인 교수가 감싸 안았다. 늘 정상 문턱에서 물러섰지만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고준호가 183cm, 74kg의 좋은 신체조건을 갖췄고 헤비급 못지않은 힘, 물러서지 않는 투지와 부지런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성실하고 가능성 있는 선수라면 키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김 교수는 회고한다.

고준호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자세로 험한 훈련을 소화해 작년 대학 2학년 때엔 국방부장관기 2위, 대학연맹대회 2위, 최우수 선발전 1위의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올해 마침내 단국대 태권도팀 창단 이후 최초로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우승, 태권도인들을 놀라게 했다.

밝은 미소를 되찾은 그를 지난 14일 단국대 부속병원에서 만났다. 국가대표로 1진으로 5월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그는 그동안 고된 경기로 혹사당했던 몸을 추스르고 있다. 팔과 다리가 모두 성치 않은 상태에서 최종선발전에 나선 그에게는 쉬운 경기가 없었다. 패자전에서 올라와 결승전을 두 번이나 치러야 했다.

“그동안 저를 위해 애써준 어머니와 감독·코치님들을 생각해 절대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라며 그는 치열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처음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만큼 지금 당장은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한 훈련에만 몰두할 것”이라며 “꼭 좋은 결과를 얻어 졸업 후 실업팀에서도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책을 읽는다는 그는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게 여자친구 한번 사귀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3년 동안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도 하루 두 시간씩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두 아들 가운데 장남으로 동생(고준성, 풍생고 2)역시 태권도선수다. 어려운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한다고 걱정하며 단국대학교 교직원이 돼서 일하고 싶다는 작은 포부도 얘기했다.

‘성실’ 하나만으로 서러움의 시간을 버텨온 그의 목에 금메달의 기적이 걸릴 그날을 기대한다.

정대길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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