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판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용하려던 전자호구가 사실상 무산됐다.

세계태권도연맹(WTF)는 지난 4, 5일 강원도 춘천에서 ‘전자호구 국제태권도대회’를 열고, 전자호구를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 오는 5월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와 내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정원 WTF 총재는 지난 5일 강원도 강촌리조트에서 기술위원회와 총재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자호구 평가회의(Exuctive Committee Meeting)를 마친 후 “태권도 경기를 정확하게 판정하기 위해서 전자호구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데 총재단들이 뜻을 같이했다”고 하면서도 “전자호구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만약 국제대회에서 전자호구를 서둘러 도입해 문제가 발생하면, 지금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자호구 도입 시기를 늦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전자호구 국제태권도대회 -49Kg 결승에서 한국 조은비(왼쪽)가 멕시코 알레잔드라갈에게 왼발 내려찍기를 성공시키는 모습.

● WTF의 입장

조 총재는 이날 회의장을 나오며 “IOC 측에서도 전자호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부 예산도 지원 받았다”며 “100%가 아닐 때 내놓았다가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충분히 더 개발해서 100% 만족할 때 내놓기로 결정했다"며 신중론을 폈다.

박수남 WTF 부총재도 “전자호구 도입의 목적은 심판판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니만큼 지금보다 더 발전을 해야 한다. 한 명의 선수라도 전자호구로 인해 희생이 되어선 안된다”며 신중론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박차석 WTF 부총재는 “경기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총재단들이 다른 입장을 내놓아 어쩔 수 없다”면서 전자호구 도입 무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WTF는 전자호구의 본격적인 도입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로 연기하고, 이 기간에 전자호구에 대한 문제점을 개발업체와 함께 보완하고 국내대회를 비롯해 각 대륙별 대회에서 전자호구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 “WTF도 책임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자호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WTF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모든 책임을 전자호구 관련 업체에 떠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후 조 총재는 방송매체와의 인터뷰와 대학 특강에서 베이징올림픽 때 전자호구를 도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제심판 비리와 사무처 직원들의 갈등으로 내홍을 겪어 전자호구 도입을 착실하게 준비해 오지 못했다. 전자호구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만 있었을 뿐 민첩한 후속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계명대의 한 교수는 “전자호구를 베이징올림픽 때 도입하겠다고 해 놓고선 서둘러 전자호구에 맞는 경기규칙을 만들지 않는 것을 보고 WTF의 행정이 실망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전자호구가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 1차적인 책임은 기술 결함을 완벽하게 개선하지 못한 제조사 측에 있지만 WTF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전자호구 업체 측은 지난 5일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날 오전에 성급하게 회의를 열어 베이징올림픽 때 전자호구를 사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성급한 처사였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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