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한국 사범들은 불러 왔는데 우리 가족은 아직도 못 들어오고 있으니 참으로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DOPS(중앙정보정치국)에 지도하러 가서 국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주권이 없어 가족을 아직 초청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주권 신청이 늦어지는 사유를 알아보니 나의 여권이 임시여권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DOPS와 브라질 법무부 및 주한 브라질 대사관의 도움으로 영주권 수속이 급속히 진행되고 1972년 나는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태권도가 널리 보급되고 도장도 운영하고 있었지만 사범인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진 않았기에 우리 가족은 한국문화회관에서 빌려준 방 한 칸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더욱이 다른 교포 세 가족과 사범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여섯 살부터 1살까지 딸만 셋이었던 나는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 아내에게 마음 아픈 소리를 많이 하였다. 결국 브라질에서 막내아들 알렉스를 얻었다.

가족들의 생계가 여유롭지 않자 아내는 한국에서 입고 온 옷들을 팔아 생활비를 장만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옷 한 벌이면 쌀 한 가마를 사서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아내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내게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낮에 장사를 다닌 것이다.

이웃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아내에게 장사를 다니지 말라고 하였지만 당시 우리 생활로서는 아내가 장사를 그만둘 형편이 되질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장사를 하지 말라고 아내를 종용했고 아내는 나의 눈을 피해 가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경제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아내에게는 장사를 하지 말라고 했던 가장으로서의 슬픈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도움과 지원이 없었다면 브라질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조상민 사범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더욱이 아내는 사범들과의 식사모임 비용까지 부담했어야 했다.

결국 아내는 은제품 선물가게 및 여성의류가게 등을 운영하면서 태권도 도장보다 훨씬 나은 수입을 얻었고, 브라질에 태권도가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태권도장은 안정화 되고, 가족과 아내 덕분에 생활에 여유를 얻고 생전 처음 중고 폭스바겐을 얻었을 때는 천금을 얻은 듯 기뻐 아침저녁으로 차를 보듬고 살았다. 치열한 전쟁을 지나 생활이 주는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조상민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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