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도장에는 원주민 학생들을 비롯하여 대학생, 교수, 변호사, 판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입관이 잇따랐다. 도장이 마련되고 어렵사리 홍보가 이루어지고 원생들이 몰려들자 내겐 또 다른 어려움이 산처럼 다가왔다. 그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포르투갈 말(Portugues)를 할 줄 모르는 나는 기본적인 경례, 차렷 등은 한국말로 가르치고 태권도 동작은 몸짓으로 가르쳤지만 태권도 이해의 기본이 되는 태권도의 정신과 철학을 나눌 수는 없었다. 태권도 사범으로서 동작이라는 형식은 전수하지만 정신은 전수할 수 없다는 것은 크나큰 괴로움이자 시련이었다.

태권도 정신을 전수하기 위해 나는 이들의 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교포 학생에게 시간을 내어 포르투갈 말을 배우고 이태리 교수, 태권도 학생에게 회화를 배워가면서 ‘TA BOM(좋다)’ ‘BOM DIA(좋은 날)’ ‘TUDO BOM(전부 좋다)’ 그리고 ‘OBRIGADO(감사하다)’등 기본적인 말들을 시작으로 소통능력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 브라질에서 첫돌배기처럼 인내로 정착하려던 마음을 되살려 이들의 언어도 아이의 마음으로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날아다니는 귀신, 한국에서 왔다’라는 제목의 사진과 기사가 브라질 매스컴에 보도되자 상파울 대학, 경찰 특수부대 등에서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나를 찾아와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브라질 사회에서 태권도의 위력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요구에 응할 수 없었던 나는 우선 특수부대와 경찰 사관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또한 브라질의 DOPS 즉,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중앙정보정치국에 해당하는 대통력 직속기관에서 특별지도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태권도장 운영과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마다할 수 없었다.

태권도장의 운영은 정상화되고 브라질에서의 생활도 안정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한 번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장 운영을 방해하기 위해 위장 입관한 교포 학생 3명이 나날이 도장의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도장 기강을 어지럽히지 말 것을 충고하였으나, 학생들은 외려 반항을 하였다. 사범으로서 원생을 대상으로 기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변호사를 앞세워 폭력을 사유로 경찰서에 고발하고 추방조치를 요청하였다.

교포사회는 다시 한 번 떠들썩해졌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학생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님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를 기다린 것은 변호사와 나를 추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쏘는 권총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4층에서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복도와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피해야 했다. 그러나 나를 쫒아 내려온 한 사람이 나를 향해 욕설과 모함을 내뱉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간신히 나를 다스리고 참담함을 씹으며 어렵사리 도장으로 돌아오니 학생들은 경찰국에서 나를 체포하러 다녀갔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 시간에 경찰국을 방문하면 구타당할 것이 분명하니 다음날 찾아가라며 의견이 분분했다. 영주권도 없는 내가 경찰국에 가면 어찌될 것인가? 추방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학생들 앞에서 도망치고 주저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추방이나 구타보다 주저하고 비굴한 모습의 사범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나를 견디기 힘들게 할 것은 분명하였다.

경찰서에 간다는 나의 결심에 학생들은 증인을 서겠다며 따라 나섰고 영사관 김성만 통역과 TV방송국 기자까지도 나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비장함을 감추고 경찰서로 들어서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추방된다면 나의 긍지와 자긍은 어디에서 다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경찰서에는 당직 근무자만이 남아있었다. 나의 방문 이유를 들은 당직 근무자는 나를 유치장에 넣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계약 지도를 하던 DOPS에서 경찰서로 연락하여 나의 방면과 고소 취하를 처리해 주었다. 벼랑 끝에서 다시 한 번 살아남은 나는 변호사도 꺾지 못한 조상민 사범이라는 이름으로 교포사회에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게 되었다. 불순한 의도들이 점차 기운을 잃으면서 브라질 교포사회도 내부적으로 안정적인 질서를 갖추어갔다.

조상민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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