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오늘이 있을 수 있도록 토대를 닦은 원로 태권도인들을 찾아 당시의 이야기와 근황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온 태권도신문이 새해를 맞으며 찾은 원로는 김용채(76․金鎔采) 전 대한태권도협회장.

김용채 제5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요즘도 정기적으로 등산을 다니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었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연락을 취했을 때도 김 회장은 산에서 전화를 받았다. 약속이 이뤄진 날은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 김 회장의 자택을 찾았다.

김 회장은 1961년 ‘5.16 군사혁명’ 당시 박정희 대통령(당시 소장)과 함께 한강 인도교를 넘어온 이른바 ‘혁명동지’ 중 한사람이다. 당시엔 소령이었다. 제7대 국회의원(1968년)을 시작으로 정계에서 입문해 9, 12,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울시 노원구 초대 민선 구청장(1996년)으로 당선됐고, 한국토지공사 사장(2000년), 건설교통부 장관(2001년) 등을 지냈다. 이 정도면 김 회장의 관운(官運)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이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재직한 것은 1967년 1월부터 1971년 1월까지 만 4년이다. 제5대와 6대 회장을 연임했다. 전임 회장이었던 2대 박종태, 3대 최홍희, 4대 노병직 회장의 임기가 모두 1년 남짓이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김 회장의 재임기간은 긴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재임기간이 길었던 만큼 김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태권도 발전의 터를 닦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본인이 정통 태권도인으로서 태권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회장을 맡기 전인 1965년에 이미 일본 공수도와의 교류전에서 우리측 대표단 단장을 맡을 정도로 태권도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당시 김 회장은 집권 공화당의 청년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태권도 발전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정부측 인사라는 점과 정통 태권도인이라는 이유로 1967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한 5개 도장이 통합을 해서 협회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아직 기초가 안 닦여 있었어요. 대한체육회에 가맹은 되어 있었는데, 경기 규칙, 세부 사항 이런 것들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었고, 품새도 제각각으로 통합되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래서 경기규칙위원회, 품새위원회, 기술분과위원회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경기규칙도 정리하고, 품새도 통합하고 했지요.”

이렇게 태권도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 외에 김 회장이 의미있게 생각했던 사업으로 해외사범 파견이 있다. 1960년대인 당시 해외에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막 4단, 5단이 많이들 배출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태권도장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도장경영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침 해외에 나가서 공부도 하고, 태권도를 가르쳐 돈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나서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외무부(당시)에서 사범들을 해외에 잘 안 내보내 줬어요. 당시 여권발급 요건을 보면,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재정보증이 있어야 하고, 유력인사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서 여권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사범들이 나에게 해외에 좀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들 했지요. 당시 외무부 여권실장이 나중에 외무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1983년 아웅산테러로 순직) 씨였는데, 내가 만나서 태권도 사범들이 해외에 나가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준구(준 리) 사범의 경우에는 미국 상하 의원들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알려주며 설득을 했지요. 그러자 이범석 씨가 놀라면서 진짜냐고 묻기에 내가 직접 이준구 사범과 전화 연결까지 시켜주며 확인을 해줬지요. 그래서 결국 태권도 사범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물꼬를 트게 됐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에 파견된 사범들이 오늘날 태권도 세계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태권도 세계화의 숨은 공로자로 김 회장의 이름이 빠질 수 없다.

태권도 자세를 취하며 설명하고 있는 김용채 회장

김 회장의 공로 가운데에는 국기원 건립의 기초를 놓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서울 역삼동의 부지를 직접 잡은 사람이 김 회장이다.

“그 때가 양택식 서울시장 시절이었어요. 국기원을 만들어야겠는데 터가 있어야지. 그래서 양 시장한테 말했더니 역삼동을 추천해요. 그 당시 강남은 허허벌판일 때였는데, 아무튼 그래서 역삼동 언덕에 국기원의 터를 잡았지요. 그리고 국회 예결위원회에 건의해서 국기원 건립예산 3천만원을 마련했어요. 그 후에 내가 회장에서 물러난 후(1972년) 이것들을 기초로 해서 김운용 씨가 회장으로 있을 때 국기원이 만들어진 거예요.”

이런 점에서 볼 때 김용채 회장의 후임으로 1972년 취임한 김운용 회장이 태권도 글로벌화의 꿈을 이루는 데는 전임 김용채 회장이 다져놓은 기틀이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태권도의 올림픽 진입이라는 화려한 공적에 가려 상대적으로 그 이전에 태권도 발전의 기틀을 다진 김용채 회장의 역할과 공이 다소 과소평가되고 있는 점이 없지 않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 했다.

김용채 회장은 태권도 발전에서 자신이 기여한 바에 비해 과소평가되고, 현재의 후배들이 자신을 비롯한 원로 태권도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의 일에 부지런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섭섭한 속내를 비추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태권도인으로서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다면 그 점에 만족한다고 했다. 김 회장의 이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은 김 회장이 태권도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은 강덕원 출신이다. 그때는 어떻게 태권도를 수련했을까?

“그때는 요즘 같은 건물이 없어서 태권도 수련할 장소가 쉽지 않았어요.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인가 그랬는데 우리가 어디서 수련을 했냐면, 홍릉에 있는 정화여중 강당을 빌려서 수련을 했어요. 그때 강당이라고 해봐야 지금 같은 강당은 아니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고마운 장소였지.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인 5시부터 6시까지 수련을 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난 후 저녁 7시 이후에 또 수련을 했었어요.”

그때 함께 수련했던 사람으로 박철희 원로가 있다.

“그때는 태권도라고 하지 않았고 우리는 권법이라고 했어요. 지금 같은 품새는 없었고 ‘평안’, ‘밧사이’ 같은 가라테 형을 수련했지요. 중국의 권법 형도 같이 수련했어요. 당시 중국집 같은 곳에 중국 무술을 하는 화교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한테서도 배우고 했지요.”

예전에 태권도를 수련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적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태권도가 겨루기 경기에만 집중이 되어 손은 쓰지 않고 발만을 사용하는 점을 지적했다. ‘태권도(跆拳道)’가 아니라 ‘태도(跆道)’라는 것이다.

“우리 때는 수도(手刀), 정권의 종류도 많았고 수련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일부분만 따서 발차기만 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까워요. 태권도는 품새, 겨루기, 격파의 3부분이 모두 모여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권도인들이 이러한 점들을 잘 알아서 태권도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김용채’라는 이름을 태권도인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김 회장이 구청장을 지낸 노원구와 인접한 구에서 오래 살았었고, 그 점이 아니더라도 유력 정치인이던 김 회장의 이름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자가 만난 ‘김용채’라는 인물 속에서는 정치인이나 고위 행정가로서의 모습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김 회장은 만 서른의 나이에 목숨을 걸고 ‘혁명’에 뛰어든 사나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과연 그러한 일이 있었던가 싶게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김 회장은 골프나 등산 외에 서예를 취미로 가지고 있다.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이미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지만 김 회장 서재에는 항상 화선지가 펼쳐져 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자신이 쓴 글씨를 선물로 주었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를 옮긴 것인데 그 호방한 내용이 김 회장을 닮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오로봉위필 삼상작연지 청천일장지 사아복중시 - 이백 시, 천보산노옹 연곡 씀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을 종이로 삼아 내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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