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다시 쌓기는 힘들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무너지고 쓰러진 잔해들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데 장해가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고등학교 태권도부도 이와 같은 시련을 거쳤다. 30여 년 동안 지속되던 태권도부가 한 지도자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해 해체의 문턱까지 몰리게 됐던 것이다.

지난 2005년 고양고 태권도부 지도자는 물러났고, 3개월간 감독의 공백으로 태권도부도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교직원들은 태권도부의 해체를 결정했지만 학부모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지못해 다시 지도자를 찾아 나섰고, 역경 속에서 홍문주(38) 감독을 새로이 영입했다.

홍 감독은 동아대와 한국철도공사를 거치며 선수로 이름을 떨치다 무릎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지도자의 길로 돌아섰다. 명문 한성고와 발산중을 거치며 지도자로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유능한 인재다. 하지만 고양고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홍 감독도 한숨부터 나왔다.

“처음 2년 동안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서로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바로 기숙사에서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훈련에 열중했다. 학교수업도 잘 받을 수 있도록 선수들을 배려하며 지도했다. 감독이 함께 먹고 자고 학교를 떠나지 않자 3개월간의 공백으로 풀어질 대로 풀어졌던 태권도부의 기강이 바로 잡혔고, 선수들의 눈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고 태권도전용체육관에서 맹훈련중인 고양고 태권도부.

홍 감독은 특히 이전 지도자가 금전적인 부정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만큼 학교나 체육부에서 지원받는 모든 금액을 학부모들이 관리하도록 했고, 자신은 선수지도에만 힘을 쏟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죽은 땅에서 새싹이 돋듯이 고양고 태권도부도 자리를 잡아갔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선수와 지도자는 서로 친숙해 졌으며 팀 단결력도 좋아졌다. 덕분에 올해 대회 입상 횟수가 하나둘 늘어났고, 지난 10월 열린 러시아 오픈에서는 종합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홍 감독이 노리는 무대는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해외무대로도 눈길을 돌렸다. 올해만 해도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태권도대표팀이 고양고를 방문해 20일간 훈련을 했으며 우크라이나 선수들도 고양고를 찾아 함께 훈련을 했다. 뿐만 아니라 상해 우송중고등학교는 고양고와 자매결연을 했으며 올해 졸업한 태권도부 서민우는 상해체육대학에 4년간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현재 열심히 수학(受學) 중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고 또 이룰 수 있었을까?

“해외로 길을 열어주어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태권도만 가르치는 지도자보다는 인생을 가르쳐주고 함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28년 동안을 경기장에서 보낸 덕분에 그동안 쌓인 많은 인연들이 도움이 됐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홍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중국을 방문해서 훈련할 때에는 모든 비용을 중국 측에서 부담했고, 외국에서 태권도의 위상과 태권도에 대한 이미지를 직접 확인한 선수, 학교 교사, 학부모 모두의 인식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

홍 감독 부임 당시 13명이던 팀이 내년에는 32명의 정예 멤버로 출발한다. 모든 것이 타버리고 잔해만 남았던 고양고 태권도부. 3년이라는 긴 시간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새로운 태권도부를 만들어냈다. 고양고의 내년 목표는 전국대회 종합우승이다. 고양고의 지난 3년을 지켜본 사람들은 절대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병주 기자  sign2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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