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하나. 올림픽 태권도 사상 최초로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인해 승패가 뒤집어졌다. 사건 둘. 선수가 경기장에서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발로 차는 사태가 발생했다.
둘 중 하나만 해도 태권도 사상 최초로 발생한 대 사건인데 이 둘이 모두 올림픽 태권도 마지막 날인 23일 발생했다. 태권도로서는 악몽과도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첫번째 판정번복 사건은 중국의 첸종과 영국의 사라 스티븐슨간의 여자 헤비급(+67kg) 8강전에서 발생했다.
2000년, 2004년 연거푸 올림픽 금메달을 석권한 중국의 첸종은 자국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며 올림픽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출전했다. 경기장은 첸종에 대한 응원 열기로 가득했다.
첸종은 박빙의 우세를 달리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3라운드. 1-0으로 첸종이 앞서고있는 상황에서 경기 종료를 코 앞에 두고 스티븐슨의 앞발이 첸종의 얼굴에 적중한 것이다. 그런데 점수는 올라가지 않았다. 득점이 인정됐다면 2-1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영국 코치는 항의했고 주심 1명과 부심 4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영국의 스티븐슨은 경기장을 내려오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표시했고 코치도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관중석에 있던 영국 응원단도 강하게 항의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 첸종이 개최국의 잇점을 등에 업고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는 듯 했다. 그러나 1시간여가 지난 후 의외의 발표가 나왔다. 영국 측의 소청으로 비디오 판독을 해본 결과 심판 판정의 잘못을 인정하고 결과를 번복한다는 것이다. 경기장은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는 약 30여 분간 중단됐다.
심판판정 번복이라는 것만 해도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보다 더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남자 헤비급 동메달 결정전 두번째 경기. 쿠바의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와 카자흐스탄의 아만 칠마노프 간의 경기였다.
2라운드 쿠바의 마토스가 3-2로 앞서고 있던 상황.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두 선수의 다리가 부딪쳤고, 부상을 입은 마토스가 통증을 호소했다.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계시'를 선언했다. 경기 규정상 선수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다치면 1분의 시간을 준다. 주심은 1분이 종료되기 전 선수의 상태와 의사를 점검한 후 선수가 원할 경우 1분의 시간을 더 줄 수 있다. 경기 진행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면 경기불능에 의한 기권으로 처리할 수 있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스웨덴의 차키르 첼바트 주심은 1분이 종료되기 15초 전부터 시간을 알렸다. '15초', '10초', '6초'하는 식으로 카운트다운했지만 선수의 경기지속 의사를 점검하지는 못했다. 결국 1분이 지났고 심판은 경기종료를 알리는 '그만'을 선언했다. 경기가 끝난 것이다.
그러자 쿠바의 마토스와 코치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항의에 아랑곳없이 주심은 카자흐스탄의 승리를 선언하는 수신호를 했고 이에 격분한 마토스는 그자리에서 그대로 왼발로 주심을 가격했다. 마토스의 킥은 주심의 얼굴에 적중했고 경기장은 일대 혼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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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의 앙헬 발로디스 마토스가 첼바트 주심을 발로 가격하고 있다. |
이 와중에도 동메달을 따낸 카자흐스탄의 선수와 코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경기장을 환호하며 달렸다. 뭐가 뭔지 잘 알기 힘든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 당연히 이 후 열릴 경기가 한동안 지연됐다.
경기장이 정리 된 후 세계태권도연맹은 심판폭행 등의 물의를 일으킨 쿠바의 선수와 코치를 영구적으로 제명시킨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하루 동안 발생한 두 가지의 큰 사건으로 태권도는 이날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중국 CCTV와 영국 BBC는 심판판정 번복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심판폭행 사건은 올림픽 토픽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정한 심판판정', '재미있는 경기', '미디어 노출' 이라는 태권도의 당면 과제 중 적어도 한가지는 제대로 달성한 하루였다.
베이징=박성진 기자 kaku6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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