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혈압이 아주 높지 않다면 아무 증상이나 징후가 없기 때문에 수년 동안 알지 못한 채 지내오다 심장발작, 뇌졸중, 만성 콩팥병 같은 심각한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slient killer)”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만성 콩팥병에도 꼭 맞는 별명이 될 것 같습니다. 일례로 필자는 얼마 전 진료한 환자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려 합니다.

한림대학교의료원 강동성심병원 신장내과 김수진 교수.

43세 남자 환자는 10일 전부터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호흡 곤란과 갑작스런 시력저하가 발생하여 응급실에 내원하였습니다. 당시 혈압은 230/160mmHg이었고 심한 폐부종과 고혈압성 망막병증이 발생한 악성 고혈압(malignant hypertension) 상태였습니다. 콩팥 기능 역시 흔히 피를 거르는 치료로 알고 있는 투석을 하지 않고서는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평상시 아무 증상이 없었던 환자는 쓰나미처럼 갑자기 진단받은 여러 질병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고, 투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욱 동의할 수 없어 하였습니다. 수차례 투석을 거절하던 환자는 증상이 악화되고서야 치료에 동의하였고 현재는 혈액 투석을 시행하며 다시 직장에 복귀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환자가 극단적인 경우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신장내과에서는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환자입니다. 병력을 청취하다 보니 환자는 15년 전쯤 직장에서 건강 검진으로 시행한 요검사에서 단백뇨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내왔으며, 2년 전 고혈압을 진단 받았지만 약 4개월간 혈압약을 복용하다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수년 전의 단백뇨는 환자에게 이미 콩팥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람(alarm) 징후였고, 콩팥병으로 인해 고혈압이 발생하였을 수 있으며, 반대로 조절하지 않은 고혈압으로 인해 콩팥병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콩팥병의 예방 혹은 치료에 대한 최소한의 기회를 모두 놓친 뒤였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이 소변 검사에서 혈뇨나 단백뇨를 보이는 경우를 “무증상적 요이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시적인 경우도 있으나 지속되는 경우에는 만성 콩팥병이나 요로 질환의 징후일 수 있으므로 중요한 소견입니다. 또한, 콩팥병은 부종 등의 증상이 있을 수도 있으나 대개 증상이 없어 콩팥 기능이 몹시 나빠질 때까지 간과되기 쉽습니다.

만성 콩팥병을 조기에 발견하였을 때에는 항고혈압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어 무엇보다 콩팥병이 있는지를 조기에 아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만성 콩팥병의 존재 여부는 단지 세가지 간단한 검사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혈압 측정, 소변 검사, 혈청 크레아티닌 검사입니다. 나이나 기저 질환의 여부와 상관 없이 만성 콩팥병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뇨병, 고혈압, 만성 콩팥병의 가족력, 고령의 환자들은 특히 만성 콩팥병 발생의 위험군으로 만성 콩팥병의 발생 여부에 대해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합니다.

만성 콩팥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시점을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단백뇨나 혈뇨를 우연히 발견하였으나 간과하고 계신 분들이나 앞에서 언급한 만성 콩팥병 발생의 고위험군인 분들은 가까운 내과 병원에 방문하여 비교적 간단한 검사로 발견할 수 있는 만성 콩팥병의 존재 유무를 조기에 검사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한림대학교의료원 강동성심병원 신장내과 김수진 교수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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