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지난 2월 서울 A초등학교 태권도실. 태권도를 가르치는 강사도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의 복장도 제각각이었다. 도복을 입은 학생들은 3명 남짓. 낡고 허름한 교실을 개조한 태권도실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복을 입고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다.

이곳은 학교 측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외부 강사를 선발해 3개월 단위로 교내 학생들의 접수를 받아 일반 태권도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4만 원의 수강료를 받으면서 운영되는 ‘방과 후 학교’ 태권도 수업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센터. 이 곳에서는 '방과후 학교'프로그램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례 2>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옥정초등학교 인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함모 관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학교의 ‘방과 후 태권도 프로그램’ 시행 이후 수련생의 20%가 넘는 인원이 퇴관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태권도 수련 시설이 조금 더 보강된다고 해서 태권도장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누가 비싼 돈 내고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겠느냐”며 한숨지었다. 그는 “앞으로 방과 후 태권도 프로그램의 수련 횟수가 더 이상 늘지 않기만을 바란다”며 고개를 숙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3월부터 ‘방과 후 학교’를 전국적으로, 지속적으로 확산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정부의 이 같은 시책에 발맞춰 몇몇 학교들은 교내에 문화스포츠센터를 설치해 ‘방과 후 학교’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해당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성인ㆍ유아ㆍ어린이들의 체육 프로그램(수영, 검도, 스트레칭, 헬스 등)을 위주로 시행되고 있고, 태권도도 정식 프로그램의 하나다.

이처럼 방과 후 태권도 프로그램이 수도권 학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인근 태권도장들의 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학부모와 함께 하는 방과 후 수업에 문전성시

서울 성동구 옥정초등학교에 이웃한 옥정문화스포츠센터. 이곳은 옥정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육이 이뤄지는 장소다. 이곳의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은 연일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역주민들과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 대부분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이곳을 향하고 있다.

이곳의 태권도 수업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두 차례 이뤄진다. 주 5회(월~금) 수업의 한 달 수업료는 55,000원. 주 3일(월·수·금) 수업료는 44,000원이다. 현재 수련생은 40여 명.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자녀를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같은 시설에서 아이와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안심이 된다. 일반 도장의 반도 안 되는 비용에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다른 곳에 보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신당역 인근 ××문화스포츠센타에서도 같은 형태로 ‘방과후 학교’ 태권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방과 후 태권도 교육에 참가하는 학생이 60명 정도 되는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일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관장은 “방과 후 태권도 수련장에 가보았더니 수련 시설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련 환경이 개선된다면 우리 도장도 상당히 큰 타격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료는 반값인데 시설까지 기존도장과 비슷해진다면 결과는 당연하다는 게 일반 태권도장 지도자들의 중론이다.

이 지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 관장은 “시설 면이나 교육의 질 차원에서 우리가 앞선다. 하지만 싼 맛에 ‘방과후 학교’ 태권도 수업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아서인지 요즘 수련생 입관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2품에 앞차기도 못해 도장으로 옮겨 가기도

그러나 ‘방과 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태권도 수업의 폐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싼 맛에 자녀에게 학교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해 2품까지 땄었다는 한 학부모는 최근 인근의 일반 태권도장을 다시 찾았다. “불성실한 교육으로 인해 앞차기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을 보면서 전문 태권도장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동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이모 관장은 “파란띠까지 매게된 10 여명의 학생들이 체계적인 태권도 교육을 받고 싶다며 다시 우리 도장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성동구의 B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강사들은 늘 조심스럽다. 이름조차 밝히기 싫어하는 한 강사는 “조심해야 한다. 인근 일반 도장에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며 취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학교에서 방과 후 태권도 수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인근 지역의 일반 도장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방과 후 태권도 교육은 학교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소규모 교육으로 인식하며 일반 도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속에 방과 후 태권도가 각 초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미술과 음악 등 예술학원과 함께 심각한 운영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ㄱ 교사는 “정부 방침이 그렇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일반 학원의 수강 인원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 폐업을 하고 말고는 그쪽 사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태권도협회의 한 관계자는 방과 후 태권도 교육에 대해 “현재로선 뚜렷한 대책이 없다. 시행학교 주변 일반 태권도장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낼 수 있는 집단행동 외에는 뚜렷한 방책이 없다”고 밝혔다.

정대길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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