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새 대회가 겨루기 대회의 폐단인 ‘불공정 판정’과 ‘판정 담합’ 등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은 가운데, 김경찬 대한태권도협회(KTA) 품새심판위원장의 ‘판정 개입설’과 ‘승패 영향설’에 대한 잡음과 추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추문과 잡음은 2년 전부터 세간에 떠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달 19일 김제에서 열린 제2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 한국대표선발전에서 전민우 남창도장 사범의 ‘기습 시위’로 표면화됐다. <본지 6월 25일자 참조>

남창도장 측은 현재 김 위원장의 부도덕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태권도인들은 김제 시위에서 제기한 전 사범의 주장(김경찬 위원장님, 제자를 입상시키려고 판정 지시 내리고…)과 관련,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김 위원장의 온갖 추문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반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경찬 KTA 품새심판위원장이 지난 2월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품새심판교육을 하고 있다.

김경찬 위원장 둘러싸고 갖가지 추문 잡음 난무

품새 전문가인 A씨는 김 위원장에 관한 추문에 대해 “김 위원장이 특정 팀과 특정 선수들을 지도하고 봐 준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떠돌았다”며 “위원장직을 그만 두든지 아니면 특정 팀과의 연관을 끊든지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말했다.

B씨는 “김 위원장과 관련이 있는 아이들이 특정 도장과 학교 소속으로 출전해 실력과 상관없이 우승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문제”라며 “이런 문제는 일선 지도자들보다 출전 선수들과 학생들이 더 잘 안다. 선수들과 학생들이 김 위원장에게 야유를 보내는 현상을 이유 없는 선동이라고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판정 추문에 대해 품새 전문가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며 김 위원장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일부 태권도인들은 “김 위원장이 물러나야 품새대회가 정화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특정 팀에게 판정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하거나 ‘판정 오더’를 내렸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김 위원장을 축으로 움직이는 품새대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저변에 깔린 정서가 편파 판정과 불공정 판정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품새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C씨는 심판계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바라기처럼 김 위원장을 따라다니는 심판들이 문제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눈치를 보면서 채점을 한다. 대회에 위촉된 심판을 보면 누가 어느 쪽 사람인지 확연하게 구분된다.

위촉 심판들 중에 김 위원장 라인(계열)의 심판들이 많다”며  김 위원장의 직접적인 ‘판정 오더’, 혹은 ‘판정 개입’과 상관없이 암암리에 불공정 판정이 자행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장 “판정오더 있었다면 당장 옷 벗겠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지적에 대해 김 위원장은 품새대회 초창기 시절, 우승을 하며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이 최근 들어 신생팀과 그 선수들에게 밀리다보니까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자신을 음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화통화에서 “나를 씹어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안다. 태권도계는 하루  아침에 한 명을 바보로 만들고 죽인다. 나름대로 품새 발전을 위해 헌신을 했는데, 나를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에 화가 난다. 만약 내가 판정 오더를 내렸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겠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자기를 따르는 측근들을 심판으로 선발하고, 주요 대회에 자주 위촉한다는 설에 대해선 “53명의 심판을 선발했다. 하지만 나 혼자 선발한 것이 아니라 6명이 선발했고, 시도별로 안배했다. 그런데 심판들 중 내 라인이 어디 있느냐”고 일축했다.

제자 등 자신과 연관이 있는 특정 팀과 선수들을 지도하고 변호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다만 고수회나 청지회처럼 나도 모임이 있기 때문에, 세미나에 초청되면 품새의 경기규칙에 대해 설명한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퇴진압박에 대해 “이제 한창 품새가 발돋움하고 있는데, 나에 대한 음해와 비방은 피어오르는 싹을 자르는 일과 같다”며 “이런 풍토 속에서 내가 물러나 다른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도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김 위원장과 품새대회를 이끌어온 한 태권도인은 “김 위원장은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김 위원장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품새 사조직 간의 다툼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품새 세계는 겨루기 세계보다 ‘사적인 무림계’ 성향이 강하다”며 김 위원장을 옹호했다.

겨루기 대회 폐단 밟아…KTA, 품새대회 재정립 필요

한편 KTA 측도 김 위원장의 판정 개입에 관한 잡음에 대해 김 위원장을 변호하고 있다. 주위의 지적처럼 ‘판정 오더’를 내리고 판정에 깊숙이 개입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춘성 기술전문위원회 의장은 “김 위원장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확인해 보니 그들의 주장은 너무 과장된 것이다. 김 위원장을 유독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4강전부터는 특정 선수와 관련이 있는 심판들을 배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KTA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임 전무의 측근이라고 해서, 이 문제를 임 전무와 결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질 않는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한번쯤 반성을 해야 하고, KTA 집행부도 품새대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품새 발전을 원하는 많은 태권도인들은 겨루기대회의 오랜 병폐가 품새대회에까지 전염되어선 안 된다며 KTA의 적극적인 대응책을 기대하고 있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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