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김운용이 제7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최홍희의 입지는 좁아졌다.

최홍희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주된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견제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박정희 정권이 연장될 것이라고 예측한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비밀리에 이민 수속을 준비하면서 평소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한 세계에 태권도를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2권 참조>

최홍희가 북한의 평양 을밀대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는 모습.

이윽고 해외여행 통제 등 자신의 활동반경이 점점 좁아진다고 생각한 최홍희는 1972년 3월 캐나다로 망명지를 선택하고 고국을 탈출했다. 그렇다면 최홍희는 왜 캐나다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캐나다가 중립국이라 태권도 이념에 합치되고 조국통일 운동을 하는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최홍희의 주장이다.

캐나다로 망명한 그는 ‘태권도 덕분’에 노동허가를 받아 1973년 볼리비아태권도협회 창설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고, 국제태권도시범단을 조직해 독일·스위스·프랑스·이집트·자메이카·콜롬비아 등을 순회하며 시범을 보였다.

그러나 정식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 그는 항상 불안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를 시켜 정치망명자인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최홍희는 정식 영주권이 발급되지 않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신원조회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1973년 8월 최는 예기치 못했던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서울에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창설됐다는 것이었다. 최홍희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태권도협회를 개인의 정치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김운용에게 세계태권도연맹을 만들 것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활동 반경을 유럽으로 확대했다. 1979년 6월, 통일유럽태권도연맹을 만든 그는 사상과 이념, 그리고 종교를 초월해 동서진영을 한데 묶어놓은 국제기구가 태권도 이외에 어디 있느냐며 ‘역사적인 날’이라며 기뻐했다.

태권도가 종교와 사상, 인종을 초월한다고 믿은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도 태권도를 보급해야 한다며 1979년 말, 태권도시범단을 조직해 북한 방문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러나 북한체제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일을 준비하고 추진해야 될 지 막막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평화통일위원장 겸 부주석이었던 김일이 해외 언론기관에 해외 인사 10명을 초청하자 이 기회를 활용해 태권도시범단(15명)을 조직한 후 캐나다 토론토를 떠나 스톡홀름과 모스크바를 거쳐 1980년 10월 평양에 도착했다.

최홍희는 북한에 간 동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인사이드월드』1997년 3월호 참조>

“내가 북한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곳이면 이 세상 어디든 간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아마 달에서도 태권도를 배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갈 것이다. 북한도 내 조국인데 가지 못할 이유가 뭔가.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 산하에 있는 가입국의 하나이다.”

북한에 첫 발을 디뎌놓은 최홍희는 그 후 북한에서의 약속대로 태권도 사범요원 교육을 맡는 등 점점 ‘친북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의 사상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던 국제태권도연맹 산하의 사범들은 하나 둘씩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러던 중 1982년 5월, 국제태권도연맹 김종찬 사무총장과 최창근 심사위원장이 서울코리아나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홍희씨는 최근 북괴를 방문,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등 반국가적 행위를 하고 있어 국제태권도연맹 전요원의 총의로 그를 추방키로 했다”며 세계태권도연맹과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1992년 5월 21일자 참조>

‘독불장군’ 식으로 국제태권도연맹을 이끌어오던 그에게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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