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11월,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여파로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장 겸 국기원장은 사퇴했고, 엄운규 국기원 부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이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본지>는 이 운동이 어떤 사람들에게 의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본다.<편집자>

●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의 동기와 과정 

2001년 4월, 대한태권도협회의 편파 판정을 문제 삼으며 일어난 ‘4.16 학생시위’를 계기로 그동안 숨 죽이고 있던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일선 태권도인들을 비롯해 재야 인사, 교수, 학자, 동문, 학생들은 힘을 규합해 태권도계의 비민주적인 요소와 불합리한 관행을 척결하자고 부르짖었다.

물론 ‘4.16 학생시위’가 일어나기 전 뜻을 같이한 서울지역의 일선 지도자들은 서울시태권도협회의 심사권 남용 등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울지역의 일선 지도자들은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학생 시위’도 태권도를 바로 세우려는 순수한 의지로 보고 힘을 규합해 깃발을 휘날렸다. 서울지역 일선 지도자 30여 명은 그해 10월, 서울 종로 YMCA에서 범태권도바로세우기운동연합(이하 범태련) 출범식을 갖고, 태권도계의 부정 비리를 척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자고 결의했다.

이날 신성환씨는 “태권도 개혁에 공감하면서도 나서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이제 학생들이 지펴놓은 개혁의 불을 얼마나 활활 타오르게 하는가는 지도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2001년 11월, 수도권의 일선 지도자들을 비롯해 재야 인사, 교수, 학생 등 700여 명은 국기원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태권도 개혁 의지를 드높였다. 이날 궐기대회는 새로 발족한 범태련이 주도했다.

이날 범태련 측은 2001년 11월 15일을 태권도 바로세우기의 날로 선포하고, 태권도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태권도의 앞날을 망치고 있는 김운용과 자신만의 출세와 안위에 눈이 먼 소수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를 규탄하기 위해 궐기대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범태련 측은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장과 국기원장 사퇴를 비롯해 엄운규 국기원 부원장의 사퇴 약속도 받아냈다.

이처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범태련 측은 이날 오후 4시 대검찰청 앞에 집결해 임윤택, 송봉섭의 엄정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범태련 측은 “비리의 온상인 이 두 사람이 태권도계를 떠나지 않는 한 어수선한 풍토는 계속된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 범태련의 조직화와 정체성 혼란 

범태련은 경기도 용인에서 개혁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 방향성, 그리고 범태련의 성격 규명에 대해 심도있게 의견을 나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양진방 교수는 “범태련이 태권도를 바로세우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일궈냈지만, 그 이면에 혼란과 숙제를 던져줬다”며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총론은 같지만 각론에서 다소 의견차이를 보였지만, 범태련을 조직화하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데 의견 절충을 보았다.

범태련은 2001년 12월 13일, 서울 송파구 여성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정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태권도 발전을 위해 제도권을 견제하고 감시 역할만 하자던 기본 취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 시작했다. 

일부 회원들의 개인의 역량에 따라 제도권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제도권에 들어가면 순수성이 퇴색한다며 반대하는 회원들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회원들은 태권도학과 교수와 동문회가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을 주도하는 것에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양진방 교수는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에 용인대와 경희대가 중심이 된 것은 두 대학이 태권도학과의 역사도 제일 길고 그래서 현장에 있는 동문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일들을 계기로 태권도학과와 학과 졸업생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지만, 이들을 파벌이라는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태권도계에 새로운 의식과 실력을 갖춘 차세대 군의 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의 대두”라고 해석했다.

회원들의 불화와 내부 결속 미흡, 그리고 투쟁 의지 혼선 등으로 내홍을 겪던 범태련은 2002년 1월 12일, 임시총회를 열고, 국기원 이사회에서 결정된 김운용 원장 재추대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최영렬-김정기 상임대표 체제를 종결하고, 한명학 상임대표 체제의 돛을 올렸다.

이날 최영렬 상임대표는 “정확한 상황 인지가 부족했다. 젊고 참신하며 추진력이 있는 범태련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사퇴했다. 범태련 사무총장직을 맡았던 신성환씨는 “개혁이란 이름으로 다른 생각을 한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범태련 일부 회원들은 “순수성을 회복하자”며 분발을 요구했다.

그러나 범태련은 회원들의 반목과 이탈, 그리고 정체성의 혼선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제도권 진입을 위해 호시탐탐 제도권 인사들과 결탁하는 회원들에 대한 불만도 가중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교수들은 활동을 중단하고 교단으로 돌아갔다.

이런 가운데, 2003년 4월,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양진방 교수가 대한태권도협회 구천서 회장의 구애를 받아 들여 전무이사가 됐다.

아를 두고 범태련 회원으로 활동했던 회원들은 “제도권에 대해 감시, 견제 역할만 하자던 양 교수가 제도권 실세가 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양 교수를 지지한 사람들은 제도권 밖에서 태권도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기보다는 기회가 됐을 때 제도권에 들어가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는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며 양진방의 제도권 진입을 반겼다.

 ●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의 의미와 문제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은 30년간 정체되어 있던 태권도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태권도계가 한걸음 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태권도 발전의 저해 인물로 거론했던 김운용 전 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이 얼마 되지 않아 제도권의 핵심 자리로 되돌아옴으로써 개혁 운동의 의미가 퇴색했다. 또 태권도 개혁과 민주화를 부르짖던 순수성이 변질돼 이전투구를 보인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특히 김 총재 퇴진 이후의 대안을 확실하게 제시하거나 제도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해 특정 인물만 부각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범태련 사무총장을 맡으며 태권도 개혁에 앞장섰던 신성환씨는 지난 13일 이렇게 말했다.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은 자연 발생적으로 때가 되어서 일어난 것이다. 태권도를 바로세우겠다고 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이 운동에 어중이떠중이 이런 저런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순수한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당시 김운용 총재는 수백명의 학생이 시위를 하는 것보다 일선 관장들이 100명 모이는 것은 더 두려워했다고 한다. 순수한 학생과 관장들의 힘을 등에 업고 (제도권에서) 자리다툼을 하거나 제도권에 들어간 사람들은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나는 그 전모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세상에 공개할 것이다.”

현재 대한태권도협회 기획이사로 있는 양진방씨는 최근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기자가 묻자 “현재 내 위치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후진들에 의해 냉철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서성원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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