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는 겨루기에 편중돼 있는 태권도의 경기방식을 다양화하고 품새를 통해 태권도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야심차게 준비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59개국이 참가해 품새대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향후 발전 가능성까지 점치게 됐다.

또 판정으로 인한 항의사태도 없었고, 대회운영도 무난했다는 평가를 들어 내년 인천에서 열릴 제2회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일부 국제심판들의 미숙한 판정과 해외 참가팀들의 품새동작규정에 대한 이해도 부족, 관중들의 호응도 미흡 등 개선해야 할 과제도 많이 남겨준 대회였다.

김경찬 대회 심판위원장이 국제심판들에게 경기규정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 정확성 채점은 좋았으나 연출력 채점은 아직

세계태권도연맹(WTF)은 대회 시작 전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경희대학교에서 세계품새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43명의 국제심판들을 대상으로 채점기 사용법과 판정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중점을 두고 철저한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국제심판들은 정확성(품새를 구성하는 기본동작의 정확성을 평가 - 5점) 채점에서는 비교적 명쾌하게 점수를 표출하면서도 연출력(숙련도 : 동작의 크기, 균형, 속도와 힘, 표현성 : 강유, 완급, 리듬, 기의 표현 - 5점) 채점에서는 미숙한 면을 드러냈다.

일부 국제심판들은 채점기 사용법이 익숙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점수를 늦게 표출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때로는 표출 점수의 폭이 너무 커 국제심판들의 시각이 균등하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또한 대회 참가 국제심판 총 43명 가운데 한국 국적을 가진 심판이 9명,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한국계로 분류되는 심판 6명이었다. 외국인들이 보면 총 15명의 한국 심판들이 판정을 하는 모양새로 비쳐졌다.

해외 참가자들은 이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고, 결과적으로 한국팀이 9개 부문을 독식하자 불만의 수위는 높아졌다.

한 국제심판이 채점기를 올바로 작동하지 못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장면.

물론 품새국제심판들이 겨루기처럼 세계화되지 못해 국내에 거주하는 심판들이 많은 점과 해외심판들이 품새 이해도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외 참가자들에게는 좋지 못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WTF는 겨루기와 마찬가지로 해외 품새국제심판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심판보수교육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품새국제심판의 선발이 '국제심판선발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물론 품새국제심판 관리와 선발에 대한 제반사항을 명기하고 있는 '품새국제심판관리규정'이 집행위원회에 통과되기 이전에 이번 대회 심판선발이 이뤄졌지만 내년 대회부터는 국제심판선발위원회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국제심판을 선발해야만 할 것이다.

● 품새동작규정 일원화, 적극적인 교육 필요 

품새동작규정의 이해도 부족은 자칫 판정시비로 이어질 수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대회는 WTF가 새롭게 제정한 품새동작규정을 적용했지만 해외 선수들의 이해도 부족으로 인해 대회장에서 급하게 동작을 수정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지속적인 반복으로 품새를 몸에 체득하는 품새훈련의 특성상 짧은 시간에 동작을 수정하기란 어렵고 큰 대회에 참가했다는 긴장감까지 더 한다면 오히려 익숙한 동작까지 실수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한국팀의 경우 선수들의 기량이 월등한데다가 품새동작규정에 관한 정보취합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해 이에 대한 외국팀들의 반감이 적지 않았다.

특히 WTF가 국내외 품새교육에서 사용했던 품새 DVD와 국기원이 발간한 태권도교본 수정증보판의 동작규정이 서로 달라 혼란이 더욱 가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WTF는 품새특별위원회를 구성,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WTF 품새 DVD와 국기원 태권도교본의 품새동작들의 허용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품새동작규정을 결정했지만 해외 팀들이 숙지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했고, 홍보도 미흡해 오점을 남겼다.

내년 대회부터라도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원화된 품새동작규정을 결정하고 이를 세계 각국 협회에 시급히 홍보하는 한편 단순히 책자 배포가 아니라 전문 강사들을 파견해 품새동작규정을 정확하게 인지시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박수남 WTF 기술담당부총재(오른쪽)와 이종관 대회 소청위원이 경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 대회운영·시설, 경기장 분위기 개선해야 

전체적인 대회운영은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판정시비로 인한 항의사태도 발생하지 않았고 무난히 진행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세부적인 운영상황과 시설, 경기장 분위기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개선해야 할 점들이 적지 않았다.

WTF가 이번 대회에 적용한 컷오프방식은 각 부문별로 참가선수들이 품새를 시연, 예선에서는 참가선수 중 절반을 높은 점수 순으로 선발하고, 본선에서는 예선전을 통과한 선수 중 8명을 선발, 결승에서 1, 2, 3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심판들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판정이어서 각 심판들의 채점기준을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컷오프방식과 함께 두 선수가 출전해 승부를 결정하는 토너먼트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따라서 우승권에 있는 선수들이 불리한 대진에 의해 초반에 탈락하지 않도록 예선전은 컷오프방식으로 진행하고, 본선부터는 토너먼트방식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A, B, C 3개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대회장 가운데에 위치한 B경기장을 겨루기대회와 같이 중계방송에 용이하도록 높게 설치했는데 정작 심판 7명의 배치를 고려하지 못해 심판들은 경기장 아래에서 채점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품새동작의 위치에 따라 정확성을 평가하는 심판들의 시각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었다.

경기장마다 각각 2개씩 채점판을 설치했지만 관중들이 보기에는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채점판 수도 적어 관중들이 자리를 이동하면서 채점판을 봐야했다. 대형 전광판이나 채점판의 크기를 늘려 관중들이 쉽게 판정결과를 알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이번 세계품새선수권대회를 겨루기대회와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조용한 가운데에서 치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품새에 내재돼 있는 정신수양적인 측면과 동작을 취할 때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품새의 특성상 엄숙한 분위기는 그리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반 대중들이 조용하기만 한 품새대회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태권도에 대해 박진감넘치고, 활기찬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품새대회에도 겨루기대회처럼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들을 가미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중들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기장 분위기를 지적했다. 경기 중간에 이벤트를 마련, 고난이도의 동작이 포함된 경기 품새를 선보이거나 경쾌한 음악을 사용하는 태권체조부문을 도입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특히 이 대회에 대한 홍보의 부족으로 인해 일반 관중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참가선수단과 한국팀을 응원하러 나온 태권도학과생들만 관중석을 지켜 '태권도인들만의 잔치'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 외국 선수들 발전 가능성 확인 

세계품새선수권대회에서는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팀이 9개 전 부문을 싹쓸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해외 선수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띠었다. 품새동작규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점들을 고려한다면 향후에는 한국팀의 독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럽의 경우 20여년간 품새대회를 개최해온 데 비해서는 선수들의 기량이 예상보다 미흡했고, 한국팀과 외국팀의 기량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동작규정에만 얽매여서 품새를 시연하는 한국팀보다 표현성을 위주로 한 유럽 선수들의 품새 시연이 더 멋지고 감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팬암, 아프리카에는 입상 선수가 하나도 없었고 아시아도 4개 국가에 입상자가 몰렸지만 품새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면 이에 대한 호응이 높고 성장속도도 빨라 향후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한층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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