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병관 용인대 교수는 늘 떠들어댄다. 태권도의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하고 이를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스스로 개혁주의자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개혁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로서 지금까지 개혁에 대한 자신의 말을, 신념을 바꿔본 적이 없다고 한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늘 변화하려는 태도가 그의 특이한 정체성을 만든 셈이다.
 
태권도계의 뜨거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가 끊임없이 류 교수를 찾는다. 태권도계가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시점에서 그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인지 모른다. 그런 류병관 용인대학교 태권도대학원장의 연구실을 찾았다.

류병관 교수

- 태권도 관련 단체들과 60대 이상의 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에 바빠 20~40대 후배들에게 비전은커녕 희망도 주지 못한다는 여론이다.
▲ 비전은 작은 희망들이 모여야 생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는 모양이다. 태권도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할 청년들의 앞날이 어둡다. 60대 이상의 태권도인들은 태권도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동안 소홀 했던 시스템과 철학의 부재가 이제 태권도계에 여실히 드러나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통일신라나 로마제국도 문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가장 도덕적 타락이 심했고 그것이 몰락으로 연결됐다. 태권도계 단체와 선배들의 젊은 세대들에 대한 무관심이 그런 위기를 느끼게 한다. 심각하게 변화를 생각해야 할 때다.

- 태권도계에 어떤 방향으로의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창조적 파괴’라는 말 너무 마음에 든다. 서예 공부를 하는데 글씨 써 놓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찢어 버린다. 도공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흠이 있어도 도자기를 깨버린다. 태권도는 그냥 지어져 있는 건물이 아니라 문화다. 우리들 전부의 모습이 녹아 살아있는 유기체다. 잘못된 시스템과 인적구조로 인해 태권도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깨야 한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 한때 태권도를 망쳤던 자들이 고스란히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도 인적쇄신 문제로 난리다. 우리도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 전자호구가 도입됐지만 지도자들은 아직도 판정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 전자호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아날로그 수준의 시스템으로 경기를 치르다보니 심판의 역할도 전에 비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디오판독으로 인한 시비까지 보태졌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다시 끼워야 한다. 지금의 전자호구 정책은 옷에다 몸을 맞추려고 하는 짓과도 같다. 사정이 그러니 다시 일반호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이다. 오른쪽 귀 만지면 오른쪽 선수가 이기고, 왼쪽 신발 끈 만지면 왼쪽 선수를 지게 만들었던, 그런 작태들 때문에 전자호구를 도입했다.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태권도의 기술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전자호구 시스템이 개발될 때 에만 판정의 불만이 사라질 것이다.             

- 국기원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 태권도 정신조차도 제대로 확립해 놓지 못했으니 그런 불만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인내, 극기, 예의, 염치, 백절불굴이 태권도 정신인가. 인내와 극기, 백절불굴은 같은 말이다. 예의를 강조하지 무도는 없다. 홍익인간, 평화정신 같은 것이 태권도 정신인가? 태권도의 실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실체 없는 사람들이 실체 없는 짓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인류사회에 태권도가 전정으로 필요한 문화라는 것을 입증하고 그것을 확산시켜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 WTF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으로 보는가.
▲ WTF의 가장 큰 문제는 조정원 총재 개인의 단체가 됐다는 것이다. 태권도인들 전체의 의견과 생각을 반영하는 조직도 시스템도 아니다. 게다가 스포츠 행정과 태권도에 무지한 현 사무총장으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게 여론이다. 그런데도 조 총재는 침묵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을 어떻게 치러낼지도 걱정된다. 대도 전자호구로는 중계방송을 지켜볼 전 세계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 뻔하다. 그나마 발바닥 센서만이라도 수정·보완해 문지르거나 비벼서 점수가 나오는 상황을 최대한 줄여야한다. 이대로 방송에 나가면 해설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끔찍하다.

- KTA 홍준표 회장 체제가 내년으로 임기가 만료된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 노자 도덕경을 보면 말하지 않고 행하는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 지금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임을 표방하면서도 국민건강 향상이나, 정신배양, 교육적 가치의 실현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KTA가 단지 경기를 치르는 단체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국민성을 확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면 한다. 엘리트들만 양성하는 시스템은 지양되어야 한다.   

류 교수는 인터뷰 내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던 평소와는 달리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태권도가 발전하려면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장을 경영하는 사범들은 경기에 관심 없고,, 팀 지도자들은 도장 경영에 관심 없다. 겨루기 선수는 품새에 관심이 없고, 품새 선수는 겨루기에 흥미가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태권도의 정체성은 점점 흔들린다. 태권도 자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그런 사람들의 뜻이 통해야 태권도가 산다.”고 류 교수는 역설했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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