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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21, 끝>세한송백(歲寒松柏)의 선비 정신 가르쳐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11.21 10:41
  • 호수 747
  • 댓글 0

[소수서원(紹修書院) -3]

 “송백은 세한지목(歲寒之木)이요, 천세지송(千歲之松)”이라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 사시(四時)에 변함 없고,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나무들임에 틀림없다. 특히 소나무의 이러한 특성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 그리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꿋꿋함을 송백조(松柏操)라 부른다.

 

   
스승들의 공간보다 뒤로 물려 지어진 학생들의 기숙사 학구재와 지락재.
소수서원 주변은 드넓은 솔밭이다. 짧게는 3백년에서 길게는 천년 가까운 나이를 자랑하는 적송 수백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모두를 ‘학자 나무[學者樹]’라 한다니 이 나라 서원의 맏형인 소수서원은 역시 진입로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다.

 

 입구의 건너편으로는 죽계수(竹溪水)가 반달 모양으로 서원 부지를 감싸고 돌아가니 느낌 또한 아늑하다.

 매표소로부터 우거진 송림을 질러 곧장 나아가면 죽계수와 만난다. 거기 ‘경렴정’이라는 정자 하나. 주세붕 선생이 세운 것이라 하는데 북송의 철학자 주돈이의 호 ‘염계(?溪)’에서 앞 글자를 따고 안향을 높인다는 뜻으로 경(景)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다 한다. 주변 경관이 매우 탁월하여 수시로 시연(詩宴)을 베풀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호연지기를 키우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소수서원의 구조는 특이하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던 교실, 이른바 강학당이 우람한 모습으로 불쑥 다가선다. 좀 생뚱맞다는 느낌마저 들어 어딘가 뒤쪽에 다른 교실이 또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강의실로는 그게 전부.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처럼 그럴듯한 누각은 없더라도 최소한 자그마한 건물이 가림막 구실이라도 해주는 가운데 교실이 안온하게 앉아 있어야지 이건 너무 직선적이고 단도직입적이지 않은가. 제법 긴 이야기를 하려는 자세였으나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본론을 꺼내버리는 멋없음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모든 건물의 구조와 배치가 한결같이 낯설게 보였다. 강학당 바로 뒤에는 길쭉한 건물이 가로로 놓여 있다. 서원의 원장과 교수 및 관계자들이 쓰던 교무실 겸 숙소. 사용자의 격에 따라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서 그런지 건물 이름이 두 가지.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어? 어디서 본 이름인데! 옳거니, 병산서원에서 보았지. 거기서는 학생들의 기숙사에 이와 꼭 같은 이름을 붙여 놓았었지. 주역과 대학에서 뽑아 쓴 명칭으로 뜻이 좋으니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국보 111호인 안향 선생의 영정 등이 전시되어 있는 영정각.
이곳 소수서원에 와서 ‘직방’과 관련되어 알게 된 것. 선비가 학문 닦음에 있어서 곧은 방향[直方]으로 정진, 겉은 물론 속까지 익히게 되면 진정한 선비가 되고 선달(先達)이라고 불리게 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설익으면 건방(乾方)만 들어 건달(乾達)이 되고 무뢰배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선달과 건달이 정녕 그런 뜻이었단 말이지! 그나마 나중에는 마구 남용되어 아무한테나 ‘선다님’ 운운했고, 근래에는 완력을 뽐내며 주먹을 쓰는 왈짜들을 ‘건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옆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 스승의 숙소와 학생들의 숙소를 같은 선(線) 위에 나란히 짓지 않고 학생 숙소를 두 칸 뒤로 물려 지었을 뿐만 아니라, 방의 높이도 스승의 숙소보다 한 자[尺] 낮춰 앉혔다. 스승은 그 그림자도 밟지 않고 피해 간다는 공경심의 전통이 이런 무언의 가르침과 몸 낮추기 정신에서 함양된 것이 아닌가. 멋지다.

 ‘학구재’라는 명칭은 비교적 평이한 뜻을 지니고 있으니 접어두고, ‘지락재’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장자(莊子)의 외편(外篇) 제18 지락(至樂)에서 취한 것이다. ‘지극한 즐거움은 무엇인가’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는 글이다. 아주 옛날에 쓰인 내용들이지만 요즘 같은 세태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가르침이라 생각되어 자세히 소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간략히 줄이면 이렇다.

 “세속이 그렇게도 추구하는 건강부귀  명예  장수 등이 꼭 행복을 보장해주는 안락(安樂)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좇다가 인생을 망치거나 생명을 해치기도 한다. 장수를 너무 열렬히 바라는 바람에 그만 죽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되어 삶을 고통 속에 빠지게 한다.
‘지락’은 생사의 애락(哀樂)을 초월하고 일체의 고정 관념을 넘어 생과 사를 하나로 알고, 자연에 순응하여 무위(無爲)의 경지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소시적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장자 선생께서는 내편(內篇)의 대종사(大宗師)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이상의 강학 공간 바로 옆, 그러니까 서쪽에 제사 공간이 나란히 붙어 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사당이라 할 수 있는 문성공묘(文成公廟) . 문성공은 안향의 시호(諡號). 시호는 임금이나 정승, 유교의 뛰어난 선비에게 죽은 다음에 주어지는 이름이다. 사당이라 하지 않고 묘(廟)라 부르는 게 특이하다.

 

   
원장과 교수들의 집무실 겸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 건물.
문성공묘 주위에는 영정각과 전사청 등이 포진하고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료관과 고직사, 그리고 충효교육관 관리사무소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찬찬히 둘러보았으나 무엇을 보았는지 몽롱했고 전체적인 구조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 죽계수 너머의 박물관도 한꺼번에 관람해서 그런가? 다른 서원들에는 없는 기능들이 있어서 그런가?

 나중에 자료를 뒤져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같이 서원에는 학교 기능의 강학 공간과 제사 기능의 사당이 있는데, 중국식은 ‘전학후묘(前學後廟)’로 학교를 앞에 세우고 사당을 뒤에 앉히는 방식을 택하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서원이 이를 따르고 있다.

 반면 소수서원은 ‘동학서묘(東學西廟)’로 서쪽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우리나라 전통 위차법(位次法)을 따라 만들어졌다. 오라! 그래서 혼란스러웠군. 옥산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등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소수서원의 구조가 아주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 이번 21회로 조선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옥산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언, 도산서원, 소수서원) 순례 문화기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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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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