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이 국제스포츠기구로서의 권위를 잃고 무너진 것은 전자호구 혼란과 무능한 행정력 탓만이 아니다. 올림픽 종목으로서 가장 중요한 스포츠외교력도 김운용 전 총재가 떠난 이후 형편없이 약화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0년 올림픽부터는 경기종목을 25개로 축소하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다. 경기종목의 선택은 2013년 9월에 결정된다. 이대로 2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태권도는 미디어 노출도, 판정의 공정성 등으로 위태로운 입장에 놓여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잔류할 수 있도록 대책수립이 시급하다.

태권도와 함께 탈락 가능성이 거론되는 근대5종과 트라이애슬론, 복싱 등은 상대적으로 다수의 IOC 위원이나 국제스포츠계의 유력한 지지자들을 확보해 전방위 로비를 펼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소문이다. 반면 WTF는 필립 콜스(호주), 이반 디보스(페루), 고작 두 명의 IOC위원을 보유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달리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올림픽 내 잔류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WTF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오히려 태권도인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최근 정부 주도로 열린 태권도계 각 기구 수장들의 모임에서 조정원 총재는 “WTF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태권도인들이 오히려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WTF가 태권도계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조 총재가 WTF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방향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WTF가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를 위한 방안을 내놓고, 정부와 태권도 단체들의 지원을 이끌어내야 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반대로 정부가 WTF를 신뢰할 수 없어서인지 먼저 나서서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 대책을 수립할 TF 구성을 제안하고 있는 게 현 실정이다.

현재 WTF는 외교력 부재에다 태권도계와 정부가 신뢰할 만한 올림픽 전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교력은커녕 내부의 갈등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운용 전 총재 세력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낫 인드라파나와의 선거전에서 발생한 갈등을 먼저 풀고, 개혁과 화합으로 WTF의 신뢰와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태권도인들의 주문이다. 전략적 국제교류를 통해 스포츠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우호적 세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WTF로서는 IOC 위원들과 국제스포츠계에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집행위원이나 자문위원으로 끌어들여 IOC 내 지지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각 대륙연맹과 대한체육회 등 유관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단체별 역할을 나눠 올림픽 잔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대로라면 올림픽 잔류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은 물론 현재의 조 총재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WTF 총재직 도전이 앞으로 더욱 거세질 수도 있는 것이다.

태권도계는 또 내년도 아시아연맹 총회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현 이대순 회장의 진퇴에 따라 한국이 연맹 주도권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륙연맹 가운데서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 연맹 체제에 불만을 가진 국가협회들이 뜻을 모아 반기를 들 경우 아시아연맹은 다른 나라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서둘러 이대순 회장 이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WTF의 버팀목이 돼온 아시아연맹이 외국인체제로 넘어갈 경우 WTF도 다음 총재선거에서 강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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