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80kg급 결승에서 문대성 선수(현 IOC 선수위원)는 뒤후려차기 한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 변방에서 중심부로 자리 잡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그 계기를 살려 경기규칙을 더 흥미롭게 개선하고 TV 등 미디어에 태권도 경기가 더 많이 노출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은커녕 4년 뒤 치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선수가 심판을 폭행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노출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을 경우 올림픽 잔류가 힘들다고 판단한 WTF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전자호구를 사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WTF는 각종 국제대회와 대륙별 대회는 물론 대한태권도협회(KTA)에 요청해 국내 몇몇 대회에서도 전자호구를 사용해 경기를 치렀다. 2009년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지난 5월 경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전자호구를 사용했다. 모든 대회에서 라저스트 전자호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라저스트 전자호구를 볼 수 없게 됐다. WTF가 대도전자호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WTF는 “라저스트를 그동안 사용해본 결과 올림픽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결함이 드러났고, 업체의 개선 노력도 부족해 대도를 선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태권도계의 여론은 대도나 라저스트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굳이 WTF가 각종대회에서 테스트해온 라저스트가 젖혀두고 대도를 선택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결국 라저스트는 ‘올림픽 전자호구로 라저스트만 추천하고, WTF의 모든 주최 대회에 오직 라저스트만 사용할 것을 보장한다’는 계약조항에 위배된다면 ‘타사 전자호구 사용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WTF 예금자산 40억원 가압류와 함께 조정원 총재, 양진석 사무총장을 명예훼손과 계약위반 혐의로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WTF의 무능한 행정력이 드러난 것이다.

태권도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체육계도 WTF가 판정시비를 줄이기 위해 전자호구를 도입했으나 라저스트와의 법정공방에 휩쓸림으로써 오히려 올림픽 잔류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WTF와 라저스트 간 송사는 WTF의 부실한 행정, 신중치 못한 결정이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특정업체에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고, 추천하겠다는 계약내용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공인된 모든 업체의 제품을 놓고 대회 개최에 앞서 공정한 심사를 통해 기술의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야기될 리 없다. WTF가 상식에 벗어난 계약서를 작성했고, 또 이를 이행할 수 없다는 적절한 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채 일방해지라는 졸속 결정을 내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WTF가 추진하고 있는 품새 경기도복 도입 또한 전자호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전 세계 품새 선수들이 입고 경기를 치를 도복이 공정하고 투명한 선정 절차 없이 특정업체에 의뢰헤 제작, 공급됐다. 여기저기서 벌써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WTF가 품새 경기도복 도입에서도 전자호구와 같이 특정업체와 독점계약을 했다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WTF가 기준을 제시하고, 공인받은 제품 가운데서 팀이나 선수들이 자유로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 것이다.
 
지도자들은 전자호구가 도입된 이후 겨루기 경기의 박진감이 떨어짐은 물론 기술이 변질되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일반호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를 당시 득점으로 인정되지도 않던 밀어차기 점수가 나온다며 발바닥 센서를 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일선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 태권도의 경기 기술과 전자호구의 기술이 합치되고 발전되도록 연구, 개발에 몰입해야 할 WTF가 무대책으로 허송세월하다가 결정적인 시기에 송사에 휘말려 태권도의 앞낲을 어둡게 하고 있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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