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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⑧음양 조화이룬 토담 보물로 지정돼
도동서원(道東書院) (4)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8.08 10:14
  • 호수 734
  • 댓글 0

‘서원 건축의 백미(白眉)’라는 도동서원을 두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했던 소년의 심정임을 밝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노릇이다. 건물을 지으신 분들이나 건물의 주인공인 한훤당 선생 모두에게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하지만 건축에 관해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완전 문외한의 말이니 가볍게들 여기시면 될 일이다.

   
기둥머리에 흰 띠를 두른 중정당
대형 은행나무 옆에서 처음 서원을 마주 대했을 때 서원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맨 앞의 누각은 손님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목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이 수문장은 완전 무장을 하고 억지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모든 사람들을 깔보는 듯 위압적인 자세였다.

위압적이기로는 장판교(長阪橋; 長坂橋로 전해지기도 함) 위의 장비(張飛)요, 몸집 크기로는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 그럴듯해 보이려고 애쓰는 이 수문장 친구 때문에 주인마저도 빛을 잃고 그 그늘에 가려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원래 서원을 처음 지을 때(1605년)에는 이 수월루(水月樓)가 없었다고 한다. 아, 그냥 그대로 두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군!

그렇게 250년을 지낸 철종 6년(1855년), 이 누각을 추가로 지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컴퓨터 같은 장비가 없어서 미리 전체 모양을 살필 수 있는 3차원 시뮬레이션 작업을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지 모른다. 그럼 아주 작은 모형이라도 만들어서 검토해 볼 일이지. 그마저 여의치 않았으면 간단하게라도 그림을 그려 보거나 상상을 해볼 수는 없었을까.

누각을 만들고자 했던 데는 나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서원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려면 대문 바로 안에 누각이 있어야 했는데 대문도, 누각도 없으니 세우려 할 건 당연해 보였다. 대문 대신 환주문(喚主門)이라는 게 있긴 한데 너무 협소해서 더욱 그런 마음이 강렬하게 생겼으리라.

어쨌거나 두루마기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은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수월루는 문마저 굳게 닫아걸고 있어 친근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수월루를 왼쪽으로 보며 오른편 구석의 문간채를 통해, 곡간채와 전사청 등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서원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기능을 갖춘 보조구역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는 전사청
그 구역 안으로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건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시야를 어지럽힌 건 왼쪽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빨래들. 겨울용 스웨터와 바지, 내복들이 서원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구겨놓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팔뚝만한 나뭇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고 그 위를 하얀 비닐이 덮고 있었다. 아마 땔감인 모양이다. 옆에는 뭔지 모르는 물건들이 슬레이트 조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여러 개의 파이프 더미,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벽돌색 용기(容器). 안쪽 전사청 마루에는 냉장고 의자 주전자 종이상자들 다양한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어 아마도 관리하는 분의 가족이 살림을 하는 듯 보였다. 한 귀퉁이가 찢어진 비닐로 덮인 평상.

남의 약점이나 허물을 까발리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닌데, 이 경우 어쩔 수가 없다. 할 수 있으면 좀 시정되어지기를 빌어본다.
 
얼른 왼쪽 문으로 들어가니 중심 마당.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거인재(居仁齋)와 거의재(居義齋)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가운데 안쪽 정면에 서원의 핵심인 중정당(中正堂)이 훤칠하고 의젓하게 좌정하고 있다. 중정당의 6개 기둥머리에는 흰색 한지를 발라 놓았는데, 그 뜻은 이 사당에 모신 분이 공자의 문묘에 배향된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라 한다.

이 밖에도 중정당과 그 주위에는 여느 서원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장식들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으나 워낙 건축과 문화재에 문외한이라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도동서원에서 은근히 유명한 것은 의외로 토담. 나라 전체를 통해 토담이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케이스이다. 자연석을 가지런히 놓아 기초를 삼고 그 위에 황토 한 겹, 암키와 한줄 씩을 반복해서 쌓은 다음 기와지붕을 얹었다. 암키와의 선(線)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막새(처마 끝을 장식하는 수키와)를 끼워 넣어 멋을 부렸다.

사실 그것은 멋 이상의 배려이다. 음양의 조화를 통해 토담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고자 한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멋이라면 수준이 높은 진짜 멋이겠지.

도동서원 건축의 특징은 세밀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석축의 돌을 다양한 색깔로 꼼꼼하게 쌓은 것 하며, 요긴한 지점에 용머리를 돌출로 다람쥐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해 놓았고, 제사를 지낸 다음 제문을 태우는 차(次)라고 하는 공간, 제사에 쓰는 생(牲)을 검사하는 단(壇)등이 아주 오밀조밀하다.

   
탁류가 짙게 흐르는 낙동강
서원 앞의 낙동강은 탁류였다. 궁금해서 나이 지긋한 노인과 잠시 대화.
“이 줄기가 낙동강의 본류(本流)인가요, 지류인가요?”
“본류입니다. 본류.”
“그럼 강물이 늘 이렇게 탁합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주 맑습니다. 지금은 4대강 사업 공사와 엊그제 내린 비 때문에 이렇습니다.”

현풍 나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었다. 때마침 점심시간. 가까운 거리에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이 있어 냉큼 찾아 갔다. 큼지막한 개 두 마리가 마당에서 길길이 날뛰며 엄청나게 짖어 댔다. 애교로 보아주었으나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자리를 잡아도 계속 짖었다. 슬그머니 괘씸한 생각.
“손님을 쫒는 개들이구먼!”
“늘 오는 손님을 보고는 안 짖어요.”
주인인 듯한 중년 부인의 대꾸가 화를 돋운다.
“그럼 처음 오는 손님은 사절이라는 말이로군!”
“....”
아무리 경상도 말투가 투박하다지만 말본새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는 글렀다. 그러나 말이 필요 없는 음식에 있어서는 전혀 달랐다. 결이 채 삭지 않아 까짓거 아무렇게나 정식인지 백반인지를 시켰는데 맛이 매우 좋기도 했거니와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밥 한 그릇을 더 갖다 슬그머니 놓아주는 인정! 남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 다음 호부터는 병산서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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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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