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9.18 수 12:51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⑤‘서원 건축의 백미’ 도동서원
[도동서원(道東書院) (1)]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7.06 10:53
  • 호수 731
  • 댓글 0

도동서원은 대구광역시의 남서쪽 끝자락에 있다. 정확하게는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말이 좋아 대구지, 고전적 의미의 대구 시내에서는 40km 정도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경주 변두리에 있는 옥산서원에서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거나 녹녹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라기보다는 교통편이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산서원 근처 독락당(獨樂堂) 앞 뙤약볕에서 한 시간 반가량을 무료하게 기다렸다가 겨우 버스를 잡아타고 경주 시내로, 거기서 시외버스로 바꿔 타고 대구 동부터미널에 내렸다.

   
다람재에서 바라본 도동서원
때는 이미 해질 무렵이었으므로 숙소를 정해야 했는데, 같은 값이면 다음날 도동서원 쪽으로 가는 버스 타기가 쉬운 위치를 택하는 게 현명하겠다 싶었다. 대구 사정에 어두웠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우리는 대구 토박이의 신세를 좀 지기로 했다.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후배 이영철 사범에게 부탁, 가장 합리적인 지역이 어디인가, 그리고 괜찮은 식당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냥 소개만 해주기를 바랐으나 그는 중요한 일정을 일그러뜨려 가며 푸짐하게 식사대접을 해주었고, 서부터미널 앞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본의 아니게 빚을 지고 말았다. 집 나서면 이렇다니까!

서부터미널에서 현풍까지는 26.4km. 새벽에 출발하고 싶었으나 너무 일찍 서원에 도착하면 입장이 안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료했지만 일부러 늑장을 부렸다. 버스 승차권을 보니 8시 42분 56초에 구입한 것으로 찍혀 있다. 길을 물어 보면 무지막지하게 대충 가르쳐 주면서 이런 건 초 단위로 찍어주다니. 재미있다.

9시 정각에 버스는 터미널을 빠져나가 깔끔하게 출발. 아카시아 꽃길을 따라 여유롭게 남행(南行)하여 발음이 매력적인 ‘현풍’에 닿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30년 전에는 축구 잘하는 고등학교가 있어 처음으로 그 이름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현풍할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곰탕집이 상경하여 인기를 끌어 친숙하게 된 현풍. 내막적으로는, 한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다는 현풍석빙고와, 한 가문(곽씨)에 무려 12명의 충신 효자 열녀가 정려(旌閭)의 대상으로 뽑혀 이를 한 곳에서 기릴 수 있게 만든 12정려각이 유명하다고 한다. 현풍玄風. 천자문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玄은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검다, 하늘, 아득하다[幽遠], 고요하다[淸靜], 현묘하다 등. 모두가 어울린다. 전부 합한 뜻도 어울린다. 시적(詩的)이다.

현풍 터미널에서 도동서원까지는 걸어서 갔다. 버스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워낙 가뭄에 콩 나기로 다녀, 기다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걷는 게 더 나으리라 생각되었다. 15km정도.

한적한 마을 뒷길, 갈라지는 곳마다 물어가며 터덕거렸고 낙동강 기슭에 펼쳐진 텅 빈 논밭길 등을 10km 가량 터벅터벅. 뙤약볕과 단조로움이 길을 팍팍하게 달구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었다.

전혀 위안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낙동강 강둑에 융단처럼 질펀하게 퍼져있는 갈퀴나물의 보라색 꽃무리와 파아란 하늘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조각구름 하나.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노방송 시
마지막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으나 산을 하나 넘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봉우리에서 길손의 발을 잠시 머무르게 하는, 서원의 주인공 김굉필(金宏弼) 선생이 남긴 노방송(路傍松)이라는 시 한 수.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 가에 서있네/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는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을 ‘다람재’라 부른다. 산 언덕이 다람쥐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로 아래쪽 지나온 길에는 ‘멧돼지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 이라는 입산주의 팻말(플래카드)이 언덕에 옹송그리고 매달려 있다. 하하! 평소 등산길에 저런 엄포를 즐겨 써먹는 친구가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도 정말인지 엄포용인지는 알 길이 없고.

다람재에 서니, 굽이져 흐르는 낙동강 줄기와 야트막한 언덕에 깔끔하게 자리잡은 ‘서원 건축의 백미’ 라고 자랑하는 도동서원 기와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내려가는데 조용하던 산자락 숲 속에서 뻐꾸기가 메조소프라노일까 알토일까 특유의 음역으로 정적을 깨뜨렸다.

어서 오라는 환영의 노래인지, “너무 서두르지 말라, 서두르면 꼭 보아야 할 걸 놓친다”는 충고인지. 가락 자체는 익숙한데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라서 그랬을까!

   
김굉필 은행나무
드디어 서원 앞에 이르니 아, 은행나무 숲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숲이 아니라 한 그루였다.

“서원에서 글 읽는 소리
 오래 듣다 보니 예(禮)를 알아
 몸을 깊숙이 구부리고 있다는 은행나무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중심으로 엄격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도동서원 은행나무
 
 소학 속의 동자처럼
 기본적 법도에 충실하다 사화(士禍)로 희생된
 김굉필을 기려 심은 은행나무
 
 하지만 어찌 나무가 예를 알랴
 아니 사람의 도덕에 구속되랴
 척박한 땅의 윤리주의자들이여

 나무는 다만 깊이 뿌리내릴 수 없어
 위로 마음껏 벋어오르지 못할 뿐
 암반에 막혀 뒤틀린 뿌리의 고통을 보라”
 (최두석  崔斗錫의 김굉필 은행나무)

그 은행나무는 정말 웅장했다. 4백 살이 지난 지 한참 됐다. 높이 25m, 줄기 둘레 8.7m. 외형적인 수치가 문제 아니었다. 원 줄기에서 뻗은 큰 가지 하나가 옆으로 나가 땅 위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위로 올라섰다. 아나콘다를 몇 배로 확대해 놓은 것 같았다. 가을이면 이 근처가 어떻게 될까. 아마도 금빛 싱싱한 융단을 두껍게 깔아 놓은 모양이겠지.

===================================================================================

   
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최신댓글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