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이 런던 올림픽 세계선발전(6월 30일~7월 3일, 바쿠)에서 대도 전자호구를 사용하기로 했다가 대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갑자기 일반호구로 바꾸었다. 전 세계 태권도계가 대혼돈 상태다.
 
태권도계의 고질적 병폐인 판정 시비를 없애고 올림픽 정식종목 잔류를 위해 내놓은 비장의 카드 전자호구 도입 정책이 조정원 총재와 WTF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정으로 어이없이 흔들리고 태권도가 전 세계 스포츠가의 조롱거리가 됐다.

현재 WTF가 공인한 전자호구는 라저스트와 대도로 모두 두 가지. 그동안 WTF는 라저스트와 체결한 계약(WTF가 주최하는 대회에는 전자호구 사용 시 라저스트만 사용한다)을 이행하기 위해 WTF가 주최하는 대회에 라저스트 전자호구를 사용해왔다.
 
그러던 WTF가 지난 5월 18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기술용역업체인 스포츠타이밍사가 라저스트가 아닌 대도를 선택했다며 세계선발전을 대도 전자호구로 치른다고 공식발표했다. 이에 발끈한 라저스트가 WTF를 계약위반으로 걸고 넘어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타사 전자호구 사용정지 가처분신청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대도 전자호구로 대회를 강행할 경우 WTF는 라저스트에 수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대회를 코앞에 두고 일반호구로 변경한 이유다.

WTF의 어처구니없는 조치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추진해온 전자호구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어 버렸다. WTF 정책에 발맞추어 장비를 구입하고 선수들을 훈련시키며 올림픽을 준비해온 세계 회원국가들의 혼란과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부 국가협회는 WTF의 방침에 따라 라저스트에서 대도 전자호구로 바꾸어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시켜 세계선발전에 내보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WTF가 갑작스레 일반호구로 변경하는 바람에 티켓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던 선수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낭패를 맛봐야 했다.

각 국가협회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장비를 WTF 편의대로 바꾸는 것은 국제경기연맹으로서 취할 일이 아니다. 정해진 룰을 지켜야할 국제경기연맹이 업체와 체결한 기본합의조차 어겨 이런 사태를 자초했다. 조정원 총재와 WTF 사무처에 ‘무능·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선발전이 끝난 뒤 이번 대회에 불만을 품은 각 국가협회가 WTF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 파장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도 예상하기 어렵다.
 
WTF는 “라저스트의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줄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 런던 올림픽에서 대도 전자호구를 사용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또 대륙별 선발전에서도 대도 전자호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WTF 주장대로 올림픽이나 예선대회가 진행될 경우 일반호구와 전자호구를 착용해 선발된 선수들이 뒤섞여 올림픽을 치르게 된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라저스트는 현재 대륙별 선발전에 대해서도 가처분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라저스트 측은 “일차 가처분이 기각됐지만 서류를 보강할 경우 법원이 받아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WTF에 국제경기연맹다운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WTF의 존재 이유는 태권도 경기의 발전에 있다. 올림픽 잔류도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전자호구의 공인, 업체와의 장비 사용계약, 스포츠타이밍과의 조율이 모두 그런 명분과 목적 아래 신중히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김창완 기자>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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