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11 월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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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의 뿌리 5대서원을 찾아서-④옥산서원-유적지 설명 영문표기의 잘못 아쉬워

   
▲ 옥산서원 옆 계곡.
[옥산서원(玉山書院) (4, 끝)]

아주 오랜 옛날, 노아홍수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한 무리가 되어 해 뜨는 곳 동방을 향해 서서히 이동하다가 ‘시날평원’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넓은 평야. 인류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비옥한 초승달 (Fertile Crescent)’의 오른편. 이른바 ‘에덴의 동쪽’이다.

“자, 여기에 멋진 성읍(城邑)을 만들자. 그리고 특히 바벨지역에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세우자.” 사람들은 뜻을 모았다.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사용하여 일을 빠르게 진행시켜 나갔다.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사람들의 욕심이 커지고 교만해지면 뒤에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라, 이들이 한 족속이고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겠구나. 말을 혼잡하게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하자.” 하나님의 결심에 따라 그 후로 나라마다 말이 다르게 되었다. (구약 창세기 11장)

이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통하지 아니하여 많은 불편과 고통을 겪어 오고 있다.

지방의 유적지에 세워져 있는 유물의 외국어 설명문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되어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아름다운 옥산서원도 자유스럽지는 못할 듯싶다. ‘비각(신도비) 설명문’ 하나만 예를 들어 보겠다.

<사례 1> ‘성리학자’의 영어 표기.
‘Sung Neo Confucian’라고 되어 있다. 이는 학문적 특수용어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문가들만을 위한 설명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Confucian은 유학자(儒學者), Neo Confucian은 신(新) 유학자일 텐데, 유학을 바탕으로 발전, 변화된 분파가 성리학만 있는 게 아니고 명(明)대의 양명학(陽明學)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용어를 써도 괜찮은 것인가. 

거기까지는 그렇다 해도 ‘Sung'은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성리학의 성(Sung)은 아닐 테고. 성리학이 중국 송(宋)나라 때 발전됐으니까 나라 이름을 앞에 붙인다면 ‘Song' (중국어로 발음해도 같음)이 되어야 할 텐데. 철학에 밝지 못해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례 2> 이씨(李氏) 성을 가진 분들의 이름이 재미있게 되어 있다. 이언적은 I, Eon?jeok, 이황은 I, Hwang, 이산해는 I, San?hae. 처음 이언적(I, Eon?jeok)을 읽을 때는 “나, 언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을 번역해 놓은 줄 알았다. 그러나 뒤의 두 분 이름까지 보면서 이(李)를 “I”로 번역했음을 알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李)씨의 영어식 표기는 Lee, Rhee, Yi 의 세 가지가 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떠올리게 하는 “I" 라니! 

<사례 3> ‘Chu Shi'? 이게 뭘까, 잠시 궁리하다 주자의 본명인 주희(朱熹)를 이렇게 표기한 것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겠으며 적절하게 쓰여진 것일까? 아무래도 어색하다. 주희는 중국인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표현 방식대로 하면 ‘Zhu Xi’ (주시). 이것을 그대로 쓰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아 편하게 고쳤다해도 Chu Shi는 좀 이상하다.

<사례 4> 설명문의 끝 부분은 미안하지만 순 엉터리다. ‘선조(Seonjo)’가 밑도 끝도 없이 독립적으로 쓰인 다음, 마지막 문장이 이어지는데 수동태와 능동태가 꽈배기 꼬이듯 꼬여 있어 정신을 차리고 읽으면 읽어지지 않는 틀린 문장이다. 영어 단어가 주섬주섬 나열되어 있을 뿐 그건 영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뭐 이따위 시시껍절한 것들을 가지고 옹졸하게 떠드느냐 할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서원은 이 나라 선비정신의 뿌리이며 수준 높은 학문의 요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설명문 하나도 일반 관광지나 유원지의 경우와는 격조가 달라야 옳다.

말이 나온 김에 추가로 아쉬운 점 두 가지.

옥산서원 곳곳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석봉(石峯) 한호(韓濩),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 명필들이 쓴 현판들이 걸려 있다고 자랑스러워들 한다.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이산해 선생의 경우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분이 천재였고 명필이며 두 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다른 얼굴도 있다 선조 24년(1951) 조정에서는 선조의 뒤를 이을 세자를 미리 정하는 일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신하들은 죽은 공빈 김씨의 차남 광해군을 선호했고, 선조는 총애하는 인빈 김씨의 소생이며 나이 어린 신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영의정이었던 이산해는 좌의정 정철(鄭澈)과 뜻을 모아 임금에게 광해군을 강력 추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시행(추천) 하루 전날 이산해는 인빈의 동생 김공량(金公諒)을 몰래 만나 “정철이 광해군을 세우고 신성군 모자와 너를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 배신행위가 기폭제가 되어 정철이 유배를 당하고 조정에 큰 파란이 일게 되었다. 이를 ‘신묘년의 화란(禍亂)’이라 부른다. 아울러 그는 동인(東人)에 속했다가 북인으로 갔으며, 후에는 대북(大北)의 영수(領首)가 되는 등 카멜레온 같은 변신의 천재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면(裏面)에 무슨 정치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서원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공직에서 계급만 높고 글씨 잘 쓴다 해서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서원에서 만큼은 그런 인물을 내세우고 자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후학들이 무엇을 배우란 말인가.

끝으로 관리 상태. 너무 허술하다. 예산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옥산서원이 가치 없는 유적지라서 그러는가. 서원 건물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 자원봉사 해설자 이외에 관계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안타깝지만 보호의 손길은 부재중인 셈이다. 그래서 볼썽사납게 더럽혀지고 있다. 특히 기숙사였던 민구재(敏求齋) 뒤편은 온갖 지저분한 낙서가 가득 차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실태가 관계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 낙서에 얼룩진 민구재 벽.

* 다음 호부터 도동서원 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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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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