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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길 예조해 원로, “경북 태권도는 긍지”자랑스러운 태권도인 상 ‘진인장’ 받아
  • 경북=장태영 기자
  • 승인 2018.12.1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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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길을 걸어온 예조해 원로(79)가 지난 7일 국기원에서 개최된 2018 자랑스러운 태권도인 상 시상식서 ‘진인장’을 수상했다.

예조해 원로는 경상북도태권도협회 전무이사, 부회장, 회장 및 경상북도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북 태권도 발전을 이끈 예조해 원로를 찾아 경북 태권도의 성장 과정과 시행착오, 그리고 지도자로서 소신과 철학 등을 들어보았다.

예조해 원로.

Q. 축하드린다. 진인장을 수상한 소감은?

80년 태권도 인생 속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받은 진인장은 고귀하고 소중한 상이다. 아울러 내 인생에서 마지막 상이라 생각한다. 태권도인 전체가 정성을 모아서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과 경북 태권도 발전을 위해 노력해준 모든 태권도인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Q. 그동안 한국 태권도 발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1990년 월드컵태권도대회(스페인)와 1993년 제1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미국)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두 대회 모두 종합우승을 일구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훈했다. 대한태권도협회(KTA) 이사, 감사, 경북체육회 이사, 전국시도태권도협회 전무이사협의회장, 경북체육회 경기단체 전무이사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2001년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 파견, 2002년 베트남, 필리핀, 중국 파견 국기원 시범단 단장을 맡아 국위 선양에 앞장섰다.

Q. 태권도 외길을 걸으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갔나?

돌이켜 보면 나의 젊은 시절은 참 힘들고 어려웠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지난 1981년, 경북과 대구가 예고 없이 분리되고, 당시 대부분의 실무경험자(선수, 경기위원, 심판)는 대구에 편중되었다.

재정은 열악한 수준을 넘어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고향 영천에 친구와 주변 지인들에게 한푼 두푼 얻어서 협회 살림을 어렵게 충당했다.

특히 경기력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95년 초반 경기력향상위원회를 구성했다. 신생팀을 지원하고, 전국대회 출전비 보조를 통해 현재는 연간 예산 15억의 재정자립과 도내 30여 개 초, 중, 고, 실업팀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 최고 규모의 태권도 전용경기장(최무선관)도 보유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협회로 인정받는 것을 자부심과 긍지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Q.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철학이 있다면?

젊은 시절 나는 제자들에게는 “돈만 생각한다면 태권도장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했다. 지도자가 주변과 경쟁을 하다보면 수련생을 제자가 아닌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는 휴식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태권도 지도자의 길은 큰 부자도 아니고, 조금 곤궁할 수 있다. 저출산, 과다경쟁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 늘 최선을 다하는 태권도인이 되어 주길 바란다.

예조해 원로가 2018 자랑스러운 태권도인 상 시상식서 진인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는 장면.

예조해 원로는 경북 태권도의 기초를 만들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내 도장 활성화, 전용경기장 건립, 협회 기금 적립, 다수의 심사인원 배출 등을 통해 태권도 보급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81년부터 심사시행책임담당관(전무이사)으로서 도내 심사의 공정한 판정을 위해 노력하였고, 1989년부터 국기원 고단자 심사위원과 2003년부터 국기원 9단 1급 심사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심사제도 강화에 기여하였다.

경북=장태영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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