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지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우리는 다음 목적지 세르비아로 이동하였다. 세르비아는 얼마 전 제25회 하계 유니버시아대회를 개최한 나라다. 내전으로 인해 강대국이었던 옛 모습을 잃고 지금은 주위 국가들 중 제일 못사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수도 베오그라드는 정리가 되지 못한 낡고 오래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면 물가는 너무 비쌌다. 교민도 없고 한국식당도 없었다.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숙소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고성을 찾아 동유럽권의 성곽과 우리나라의 성곽을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대사관에서 만찬이 베풀어졌다. 먼 타국에서 수고하시는 대사님의 좋은 말씀이 단원들 가슴에 다시 뜨겁게 불을 지폈다.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은 단원들은 내일의 선전을 기원하며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

시범 당일 폴란드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시범장소에는 아직 매트 준비도 안 되어 있고 휑한 모습이었다. 뒤늦게 매트가 도착하였는데 멀쩡한 매트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매트를 이어 맞추고 시범준비에 들어섰다.

그래도 시범 시작이 좋았다.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아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관중들의 함성이 더해져 우리의 시범은 더욱 빛이 났고 우리가 생각했던 모두가 만족할 만한 시범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까지 모두 마치고 단원들을 둘러보니 모두가 미소를 띠며 관중들의 환호에 손 흔들며 답례하고 있었다. 다음 시범에 대한 자신감도 더한 좋은 시간들이였다. 들뜬 마음을 가슴 한 곳에 잘 간직하고 우리는 마지막 일정인 헝가리로 향하였다.

오후 늦게 도착한 헝가리. 창밖에는 내가 생각하던 유럽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보존이 잘 되어있는 옛 건물, 가지런한 도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곳을 꿈꿔 왔는데 그 모습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이춘우 단장님이 제일로 꼽은 나라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중심가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부다페스트는 많은 볼거리와 정말 아름다운 야경으로 인해 관광객들로 넘쳐 났다. 숙소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서정하 헝가리 주재 한국 대사님과 슈미츠 IOC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다페스트 스포츠홀에서 동유럽 3개국 순회공연 일정의 마지막 시범이 준비되고 있었다.

관중석은 순식간에 가득 찼고 우리 단원들은 성공적인 시범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애국가가 단원들의 눈빛을 빛나게 하고 가슴을 더 뜨겁게 하였다. 단원들을 지켜보면서 이번에도 성공적인 시범이 될 거란 느낌이 들었다.

예상은 맞았다. 단원들의 불같은 투혼이 관중들을 압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실수마저도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시범이 끝났다. 불안한 출발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까지 멋진 시범을 보여서 너무나 기뻤다. 단원들 모두가 자랑스럽고 태권도가 자랑스럽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기쁜 마음에 자축이라도 하듯이 다음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왕궁과 자유의 여신상 등을 돌아보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헝가리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우리에게는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현지 수련생을 대상으로 세미나가 있었다. 100여 명 모인 한 허름한 체육관에 들어선 순간 내 발걸음은 멈칫하였다. 그 체육관에는 일장기와 유도, 합기도의 로고와 창시자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 무술들은 일본의 것이 아닌가. 유도, 합기도 도장에서, 일본 국기 아래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는 데에 마음이 아파왔다.

예전 공산권이던 이곳 동유럽에는 아직까지는 태권도보다 가라테, 합기도가 더 알려지고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태권도마저도 WTF가 아닌 ITF 태권도가 더 활발하다고 한다. 우리의 태권도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교류를 통해 태권도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또 선진국보다는 개도국의 태권도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앞으로도 올림픽무대에서 확고한 지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고, 태권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를 각국에 보다 빠르고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태권도로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며 13일 동안의 동유럽 3개국 순회공연 시범을 마쳤다.   <끝>

KTA 국가대표시범단 주장 최정환
    

최정환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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