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4.12 금 18:13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조상민- 브라질에 뿌린 태권도 씨앗 [11]브라질서 태권도, 한국인 위상 드높여

젊고 건강한 몸에 이상이 온 것도 바로 이때였다. 지역별로 지관을 개관하는 한편 도장에서의 지도뿐 아니라 경찰사관학교에서의 지도도 꾸준히 해오던 나는 극도의 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미련한 인간이 스스로 쉬지 못하자 병이라는 선물로 강제로 쉬게 하신 것이다.

2개월가량의 정양기간을 통해 건강도 회복하고 골프도 익히는 등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신께서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먼저 겪게 하시고 후에 정금과 같은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태권도 보급뿐만이 아니라 아내의 선물가게도 번창하여 나는 가족을 문화회관에서 아파트로 옮겨 생활하게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얻은 딸 셋과 브라질에서 얻은 아들 하나. 아이들은 내 삶의 기둥이고 의지가 되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가정이 안정되니 모든 일이 더욱 순조롭게 풀리는 것만 같았다.

태권도가 브라질 사회에서 급속하게 자리를 잡게 되자 나는 브라질 무도 주지스로부터의 도전장을 받게 되었다. 리우데자네이로로 간 이우제 사범을 통해 브라질 무도 주지스가 태권도와의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도전을 받지 않을 경우 브라질 무도에 패했다는 이야기를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도전을 수락하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이 사범을 통해 경찰 입회 하에 대련을 하되 대련에 따른 부상 및 사망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건의 수락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쌍파울의 마스터 조가 대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자 브라질 무도 주지스에서는 도전을 무효화하였다. 브라질에서의 태권도는 이미 태권도 사범 조상민의 명성을 높여줄 만큼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무도 측에는 호기를 부리고 싶어 하는 세력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경찰 사관학교에서 태권도 지도를 하던 도중 나를 찾아 시비를 건 카푸에라 사범이 바로 그런 세력이었다. 나는 태권도 사범으로서 카푸에라 사범에게 무도인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사범 간의 대련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카푸에라 사범은 이미 나와의 대결을 작정하였던지라 선제공격을 취하였다. 그러나 사범 간의 대결은 태권도의 우수함을 알려주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브라질에 태권도가 보급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점차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나의 위상과 태권도의 위상, 그리고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쌍파울 주지사의 경호대원들을 대동하고 경호업무를 맡기도 하였고, Policia Militar 장교 클럽 및 군 Ciculo Militar 클럽 등에서 태권도 특별활동을 담당하면서 교포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태권도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고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약사범으로 재판을 받던 청소년에게 브라질 판사가 태권도를 권하자 변호사와 부모가 나를 찾아와 태권도 수련을 받게 해달라고 청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태권도의 정신으로 바른 심성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을 브라질 사회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체육회 브라질 지부가 창설되고 다양한 스포츠 교류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내가 체육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축구협회의 이회택 감독, 중앙대학교 민 코치 등 축구계 인사들에게도 브라질 초청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에게 태권도 뱃지를 수여하는 등 태권도와 다른 스포츠 간의 교류도 시도하였다.

조상민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