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태권도의 바른 정신이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이들은 나의 의사를 수용해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브라질 교포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는 인격자이자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교포사회의 신임을 얻어가고 있을 무렵 한 교포로부터의 초청파티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파티에 참가한 한 인사가 내게 “한국에서 지명수배자이면서 어떻게 브라질에 오게 되었느냐”고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순간 파티에 참가했던 교포 유지들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나는 큰 죄인이 된 듯한 느낌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죄인이자 도망자로 낙인찍힐 경우 절대로 브라질에서 태권도 기반을 닦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나는 호기 있게 “아니, 어떻게 수배자가 비행기를 타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국기 태권도 사범으로 이국만리에 파견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 세계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교포 유지들은 나의 말에 수긍을 해주었다. 브라질에서의 커다란 고비가 이렇게 또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에 도착한 지 2개월이 자나도록 체육관도 개관하지 못하고 생활도 안정되지 못했다. 고국의 가족들은 나의 초청장 내용에 따라 브라질에서 본국으로 많은 돈을 보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로서는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가족들에게 내색도 하지 못한 채 어려운 시절을 감내해야 했다.

남미의 더운 나라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름옷 몇 벌만을 준비한 내게 브라질의 겨울 6, 7, 8월은 밤마다 호된 추위를 선사하였다. 곤궁한 처지와 차디찬 겨울밤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게 하였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남미 브라질에서 국기 태권도를 전파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태권도 사범으로 성공하겠다던 나의 다짐은 나날이 작고 약해지고 있었다. 어려운 태권도 사범의 길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라고 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가슴깊이 분노에 가까운 화를 감추어야 했다.

나는 스스로 브라질에서 새로 태어난 한 살배기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부디 올바르고 지혜롭게 자리잡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브라질 생활 2개월 반 동안 내가 보여준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리더십과 성실한 인간 조상민으로서의 태도는 교포들과 친목계를 만들게 해주었고 이 친목계를 통해 비로소 태권도 도장의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조상민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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