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아르헨티나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안토니오 로드리게스(Antonio Rodriguez) 대령은 군인이라 그런지 태권도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 대령을 만날 적마다 장래 태권도가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날이 올 테니 태권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만일 올림픽 종목에 채택된다면 지금 아르헨티나에는 많은 태권도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으니 메달 획득은 걱정 없다며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 인접국들, 칠레, 볼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페루, 브라질 등의 올림픽위원회 위원장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하자 로드리게스 대령은 쾌히 승낙하며 그들을 설득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물론 각 국가마다 주권이 있으나 남미에서의 아르헨티나 영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아르헨티나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약속에 태권도의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그에 힘입어서인지 때맞춰 태권도가 판암(PANAM) 대회에 경기종목으로 채택됐다. 아르헨티나는 당당히 팀을 구성해 출전했다.

 그때가 1987년, 미국 인디아나 대회였다. 로드리게스 위원장은 만사를 제치고 아르헨티나의 태권도 경기가 있을 적마다 열렬히 응원했다. 한번은 그가 함께 응원하는 자리에서 “마에스트로 구, 다음 대회에는 팀 구성을 세계태권도연맹 출신이 아니었던 선수들도 대표선수로 선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원장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식 지도자 없이 배웠거나 국제태권도연맹 주도로 배운 선수들은 세계태권도연맹의 룰과 기술이 맞지 않아 이번에 제외 된 것입니다.”

나는 자부하는 게 하나 있다. 절대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에게 처음부터 WTF 태권도를 배운 제자를 편애하지 않았고, 다른 식의 태권도를 배우다가 등록한 선수도 또한 멀리하지 않았다. 지도자 입장으로 파벌을 싫어하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나는 태권도 보급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어떤 태권도든 태권도를 하는 체육인을 만나면 먼저 반갑고 형제 같은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체육인, 그래, 나는 아내에게 늘 체육인이라고 우기는(?) 사람이다. 그때 벌써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는데, 한번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넉넉하게 줘본 일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장은 제자들한테 맡겨 놓고, 지방 세미나로, 합숙훈련으로, 외국 대회 참가로, 대표단 인솔한 모국 방문으로 돌아다녔다.

 보다 못한 아내는 내 도장이 있는 근처에 옷 가게를 열었다. 아내의 억척스런 노력에 옷 가게가 생각보다 제법 잘 돌아갔다.  “여보. 돈 좀 줘. 나 지방교육 가야돼.” 아내한테 지원금 받고 도장 수입금까지 털어 돌아다니는 나에게 아내가 “여보. 당신 언제 돈 벌 거예요?” 톡 쏘며 눈 흘기면, 나는  “당신 잊었어? 나는 사업가가 아니고 체육인이야.” 하고 대꾸했다. 아내는 그런 내 답이 싫지 않은 듯 빙그레 웃어넘긴다.  아양 떨 줄 모르는 내 아내는 경상도 마산 여자다. 젊어서 한 때는 실업팀 여자배구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던 아내는 나의 동료이자,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하다.

구영채 사범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영채 사범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