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인문교양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있었다. 저자인 미학자 유홍준은 이 책으로 일약 스타 저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문화재청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유홍준은 이 책에서 남도 답사의 1번지로 강진(康津)을 꼽았다. 이 책이 알려지자 책에서 소개된 강진 일대의 다산초당, 월출산과 월출사, 고산 윤선도 고택 등에는 일반인들의 발길로 붐비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답사 열풍이 잦아들고 다시 예전과 같은 조용한 소도시로 돌아간 강진에 지난 3월 초 수천 명의 태권도인들이 찾아들었다. 2009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전남태권도협회와 대회 개최 지역 강진군태권도협회는 손님맞이에 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현옥 관장.

전체 인구가 4만 여명인 강진군에는 군협회에 소속된 도장이 3곳, 소속되지 않고 태권도를 가르치거나 타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이 서너 곳 있는 정도다. 태권도신문은 성화태권도장(관장 천현옥)을 찾았다.

천현옥 관장은 현재 강진군태권도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소속된 도장이 3곳에 불과하니, 협회 일로 신경써야할 일도 많지는 않다. 이번처럼 전국 규모 대회가 열린 것이 큰일이라면 큰일.

천 관장은 서울에서 동성중고를 나오고, 경원대를 졸업했다. 이곳 강진과 큰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있다면 부모님의 고향이라는 점 정도. 대학 시절에는 국방부장관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태권도인으로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천 관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순천 이수중학교에 코치로 부임(1996년)하게 된다. 강진과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 이때부터 이 지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천 관장은 강진의 유일한 대학인 성화대학의 태권도부 코치(1999년~2001년)를 맡으면서 강진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코치직을 후배에게 물려준 뒤로는 강진에서 태권도장을 시작했다.

전문 경기인과 지도자 출신으로서 경력과 경험에서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천 관장이지만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지역 자체도 작고, 인구도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서울처럼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고 분위기도 많이 다릅니다. 도장 인원도 서울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꾸려나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요.”

태권도장의 수가 많지 않다보니, 큰 경쟁은 없지만, 이곳도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있단다. 예를들어, ‘다른 도장에서는 이런 것도 해주는데, 여기는 왜 안 해주느냐’는 식이다. 이른바 ‘도장 마케팅’ 바람이 이곳에도 불어온 것이다.

그런 경우 천 관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어머님, 이곳은 ‘학원’이 아닙니다. 태권‘도장’입니다. 태권도를 제대로 배우기를 원한다면 믿고 맡기십시오. 그러나 다른 것을 원하신다면 다른 도장을 찾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천현옥 관장(오른쪽 끝)이 수련생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통 태권도인으로서, 자신의 제자들만큼은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다는 것이 천 관장의 꿈이다.

“전문선수를 지망하는 아이들도 많이 가르쳐왔지만, 일선 도장에서 가르치는 것은 또 다릅니다. 선수들은 당장의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일선 도장에서는 길게 내다보면서 제대로 된 정통 태권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도시는 대도시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소도시는 또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천 관장처럼 평생 사랑하는 태권도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공기 좋고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성진 기자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