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통독이 된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다. 통독 직후 몇 년간은 독일사회의 경제적인 변화를 느낄 수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막대한 자금이 구동독의 경제부흥을 위해 쓰였고 실업자들이 대거 늘어났으며 국민의 세금부담 또한 가중되었다. 동유럽에서 값싼 노동력이 대량 유입되면서 독일의 실업자수가 400만 명이 넘어서게 되었다.

곽금식 사범.

독일의 경제침체는 체육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때 칼스루헤 체육관에만 최고 1,400여 명의 관원이 있었는데 한 해 전부터는 관원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통독이 그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0 년전 칼스루헤에는 6곳의 헬스클럽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스포츠클럽이 18곳으로 늘어났고 태권도장도 당시의 2곳에서 6곳으로 늘어났다. 체육관 사이에 경쟁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25년간 쉬지 않고 주말마다 해온 지역신문 광고 횟수를 줄이고 대신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으로 홍보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둘째 아들 경수가 온라인을 통한 체육관 홍보와 거기에 필요한 디자인 관련 일을 맡아 주었고, 제대를 하고 돌아온 큰 아들 경진이가 초등부와 청소년반을 지도하면서 체육관에 활기가 더해졌다.
 
경수가 태보와 피트니스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태권도 지도자로서 지속적으로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하루 일과를 모두 체육관에서 보냈다. 이렇게 삼부자가 태권도 사범이 되고 보니 포르츠하임의 체육관을 종합체육관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포르츠하임의 체육관은 세를 주고 임대한 것이라서 종합체육관으로 쓰기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이무렵 독일 경제의 하락으로 포르츠하임의 금은보석, 시계공장들이 문을 닫는 곳이 허다해 임대나 매매 가능한 건물이 많았지만 체육관 위치로 적당한 곳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 2월 어느 날 포르츠하임의 초등부 유급자반 운동이 끝나고 어느 학부형이 상담을 요청했다. 내용인즉 체육관 자리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장소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같이 가보자는 것이다. 찾아간 곳은 넓은 주차장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고 버스 정거장이 길 양쪽으로 모두 근접해 있는 장소여서 체육관으로는 훌륭한 입지였다.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이곳은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공장건물이었다.
층당 480m²에 달하는 크기여서 체육관으로는 두개의 층이면 충분할 터였다. 이 학부형 역시 매입할 의사가 있어 우리는 건물의 반을 나누어 두 개 층을 각각 소유하기로 하고 지하실 역시 반씩 나누어 매입하기로 했다.

건물은 위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오래 비워둔 탓인지 아파트 시세에 비해 예상했던 것보다는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워낙 낡은 건물이서 매입한 이후 전체를 재건축하고 시설을 모두 설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5 년전 칼스루헤 도장을 개관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였다. 집사람과 든든한 두 아들의 아이디어에 힘입어 체육관 설계를 마친 후 다시 보이흘레 씨를 찾아갔다.

지금은 일흔이 넘어 이미 정년퇴직한 상태였지만 나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주겠다며 상당히 반기었다. 내가 처음으로 같이 일한 동양인이었다며 15 년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보이흘레 씨는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곧바로 일에 착수하였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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