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풍생고 태권도 창단 20주년 국제대회에 참가한 다음날 우리 독일팀 일행은 강원도에 도착하여 설악산 정상까지 등반하였고 이어 동해안을 따라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에서 나와 파월동기인 친구 고석진이 부인과 함께 우리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뿐만 아니라 함께한 친구의 제자들도 우리 일행 30명 모두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곽금식 사범.

자리에 앉자마자 미리 준비된 음식들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줄줄이 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푸짐한 대접을 받아왔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이름 모를 음식들이 차려진 상 앞에서 한국의 음식문화, 특히 정통 한식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독일팀은 놀란 나머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물론 그 한식은 시각적, 미각적으로 훌륭했으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음식문화에 나 역시도 감탄하였다. 친구의 간단한 소개를 시작으로 비록 독일 사람들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느껴지는 인정 넘치고 오붓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밤이 깊을 때까지 맛을 음미하며 정을 나누었다.

이후 우리팀은 계속해서 부산, 지리산, 합천 해인사 등지로 순회하면서 여행을 마치고 7월 25일 모두 무사히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한국은 강산이 아름답고 음식문화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고 뛰어난 부분이 있다. 또한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인심은 한국사회와 문화에서 잘 우러나 우리팀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돌아오는 여정에서 한국에서의 추억을 가슴깊이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라며 제각기 보고 느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이들의 한국 여행이 가치 있었음을 발견했다.

1994년 2월, 칼스루헤에서 남쪽으로 40km 가량 떨어진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15년간 태권도를 가르치던 게하르트군이 바덴바덴에서 약 10km 떨어진 라슈타트(Rastatt)라는 소도시에 제2의 체육관을 개관한다며 초청장을 보내왔다. 칼스루헤 도장을 개관한 이래 게하르트군은 40km의 거리도 멀다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태권도를 열심히 연마해 온 사람이었다.

제일 먼저 유단자가 된 관원 중의 한사람으로 벤츠 자동차 회사의 간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태권도를 몹시 좋아해 이를 보급하는 일을 취미로 삼고 태권도 관련 행사에는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나를 도와준 사람이었다.

대회조직, 심판, 행사 아나운서 등 몹시 열성적인 지도자였는데 이번에는 헬스클럽에 새로 태권도부를 열었다는 것이다. 나는 도장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개인 도장과 더불어 이제는 독일 전역에 사단법인(Verein)이 조직되어 있어 태권도가 상당히 보급되어 있는 상태였다. 해마다 선수권대회에 참가하면서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참으로 보람을 느꼈다.

게하르트군처럼 다른 도시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는 사람, 또 제2의 직업으로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는 유단자와 지도자들이 늘어나 지금은 칼스루헤를 중심으로 사방 150km 반경 내에 태권도장이 24곳이나 된다.
 
태권도가 널리 보급된 것을 목격하는 즐거움은 컸다. 그중 칼스루헤에서 140km 떨어진 프랑스 국경도시인 블리스카스텔(Blieskastel)이란 소도시에 나이가 쉰이 된 의사가 사범으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인도 태권도 초단으로 몇 년 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부부가 도장을 운영하였는데 도장 입관나이를 45세 이상으로 특별히 정해 놓은 곳이었다. 이들 부부가 뒤늦게 태권도를 시작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되어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위한 도장 입관 및 운영 방침을 만든 것이다.
 
관원들은 공무원, 교사, 군인, 은행원, 의사 등이었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운동부터 태권도의 기본동작, 품새, 호신술을 연마하여 열심히 태권도를 하고 있었다. 의사인 에더씨는 사범으로서 관원들을 지도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 병원 문을 닫고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와 칼스루헤 체육관에서 부인과 함께 운동을 마친 후 귀가하곤 하였다. 금요일 몸과 마음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운동이 태권도이며 자신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고 하였다. 금요일마다 찾아온 이들 부부와는 지금까지도 삶의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하며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내고 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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