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흔히 ’어지럽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영어에서도 ‘어지럽다’라는 표현이 참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뜻을 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신준현 교수.

예를 들면, 정상적으로도 높은데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지럽다’고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애정 표현을 해도 너무 좋아 ‘어지럽다’고 하고, 너무 심한 통증을 참을 때에도 너무 아파서 ‘어지럽다’고 하고, 술을 많이 먹은 후에도 ‘어지럽다’고 하고, 그 밖에도 달리기를 힘들게 하고 나서도 어지럽고, 기지개를 힘껏 켜고 나서도 어지럽고, 긴장해도 어지럽고, 잠을 못 자고 나서도 어질어질하고, 참 많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증상에 ‘어지럽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일시적이고 몇몇의 경우 조금 지속될 수 있지만, 어지러움에 대해서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치료가 필요한 어지러움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질환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빈혈이 있으면 어지러움이 발생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빈혈에서 보이는 증상은 어지러움보다는 움직일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이나 쉽게 지치는 등의 증상들입니다. 내과 교과서 어디에도 빈혈의 주된 증상이 어지러움이라고 기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지러움은 막연한 ‘빈혈’보다는 심근경색, 심부전, 그 밖의 심혈관 질환이나 선천성 심질환, 또는 기립성 저혈압이나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 등 많은 내과 질환 특히 심장질환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고, 때때로 질병의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도 흔히 발생합니다. 또한, 불안장애, 공황장애, 신체화 장애, 우울증 등 많은 정신과 질환의 흔한 증상으로 동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병에서 발생하는 어지러움은 어지러움에 대한 특별한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원인 질환의 치료로 증상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신경과에서 위 질환에 대한 모든 치료를 하지는 않지만, 대개의 환자나 의료인들이 이러한 증상을 감별하기 어려우므로 어지러움을 호소하면 신경과로 보내져 원인을 찾거나 감별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신경과 의사가 보는 어지러움은 어떠한 질환에 의한 것일까요?

신경과에서 검사되고 치료되는 어지러움은 ‘현훈(vertigo)’라고 불리는 어지러움으로 고막 안쪽, 깊은 내이(內耳)에 위치하고 머리의 위치와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기관인 전정기관과 중추에서 평형을 조절하는 숨골, 소뇌, 그리고 이 두 기관을 연결하는 전정신경 등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게 됩니다. 다른 어지러움과 달리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속이 메슥거리거나, 토하는 증상이 동반되며 중심을 잡기 힘들고 보행에 이상이 오며 심한 경우 의식에도 장애가 오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전정기관의 이상으로는 ‘멀미’가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한 번씩은 겪어 봤을 겁니다. 병이 생긴 부위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어지러움이 ‘현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멀미는 양쪽 귀 안의 전정기관의 평형이 깨진 상태로 한 쪽 귀에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손상이 있는 분들이 더 잘 생길 수 있습니다. 멀미보다 심한 상태로 감기를 앓고 난 후, 또는 심하게 무리한 후 한 쪽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기거나 평형이 깨지는 ‘전정신경염’ 또는 ‘전정신경병증’이라는 병이 생길 수 있는데 증상은 멀미를 심하게 하는 것 같이 어지럽고 메슥거리며 토하게 됩니다.

치료는 토하는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안정을 취하고 외래에서 약물치료가 가능하지만, 토하는 증상이 심하면 탈수를 교정하고 주사제 치료가 필요하여 단기간의 입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전정기관 중 세반고리관에 이석이 발생하여 자세를 바꿀 때 잠깐씩 이러한 현훈이 지속되는 ‘발작성 체위성 현훈’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대부분 치료에 반응이 좋고 별다른 후유증 없이 완치가 됩니다.

하지만 그 위의 중추 신경계 구조물에 원인이 있어 생기는 ‘중추성 현훈’은 문제가 좀 다릅니다. 어지러움은 전정기관의 질환보다 덜 하지만, 보행이나 몸의 균형 유지에 문제가 있고 기타 다른 신경학적인 이상이 동반될 수 있으며, 빠른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한 장애나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소뇌 또는 뇌간의 경색이나 출혈 등의 뇌졸중, 소뇌종양, 다발성 경화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는데, 특히 고혈압, 당뇨, 오랜 흡연 등의 위험인자를 가진 노인 분들에게 어지러움이 발생할 경우, 이러한 질환에 의한 것인지 신경과 전문의의 자세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잠깐 살펴봤지만, 이렇듯 어지러움이라는 증상은 무시할 수도 있고,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앞으로는 내게 발생할 어지러움이 단순히 빈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숙지하시고, 만일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이 있다면 빨리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신준현 교수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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