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30일. 체육관 매매계약을 하는 날이다. 계약 서류를 미리 받아 몇 번이고 꼼꼼히 읽어 보았으나 혼자서 계약을 하러 가기엔 왠지 걱정스러워 회계사 아우겐슈타인씨와 설계사 보이흘레씨, 그리고 집사람과 함께 공인중개소를 찾아갔다. 건물이 낡았고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격을 60만 마르크에 흥정할 수 있었다. 약 30여 분에 걸쳐 매매계약서를 한 줄 한 줄 중개인이 읽어 내려갔다. 중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독일이라는 사회가 서류계약에서 얼마나 철저한지 새삼 느꼈다. 끝으로 건물 소유주와 나, 집사람이 각각 서명을 하고 계약을 마쳤다. 이로써 독일생활 15년 만에 우리만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곽금식 사범.

1985년 10월 3일. 칼스루헤에 ‘스포츠와 여가센터(Sport und Freizeitzentrum)'란 간판을 내걸고 새 체육관 문을 열었다. 개인의 이름을 내걸기보다는 종합적인 운동 및 여가를 위한 공공체육관이란 의미에서 심사숙고하여 지은 이름이었다.

지하실은 탈의실, 샤워실, 화장실, 사우나, 솔라리움을 배치하고 나머지 100m²에 달하는 공간은 헬스장으로 꾸몄다.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접수 및 안내창구, 사무실, 208m² 크기의 태권도장과 130m²크기의 메인 헬스장이 자리해 있다. 2층에는 태권도장이 보이는 아담한 카페테리아와 100m²크기의 여성전용 헬스장이 들어섰다.

도장 바닥은 무릎을 보호할 수 있는 탄력적인 재질의 나무로 되어 있고 거울이 설치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도장의 벽과 천장이 모두 목조로 이루어졌다. 체육관 전체는 냉난방 및 통풍시설이 완벽하게 설비되어 계절과 관계없이 늘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헬스장 역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기구들을 들여놓아 시설을 이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태권도의 총 다섯 반을 비롯하여 재즈 체조, 태권 체조, 에어로빅반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체육관 시설을 최대한 활용 가능하도록 준비를 마쳤다.

개관하는 날 아침부터 방문객들이 몰려왔는데 개중에는 체육관련 인사들, 시의 유지들, 은행간부 길레씨, 설계사 보이흘레씨, 왈써씨 내외분이 있었다. 왈써씨는 체육관이 상상외로 잘 지어진 것에 감탄하였고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나를 덥썩 끌어안고 등을 툭툭 치셨다. 이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나를 지켜보던 집사람과 왈써 부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왈써씨 이 모든 것이 다 당신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 무슨 소리요. 이 모두는 당신과 당신 부인의 성실한 삶의 결과입니다.”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나에게 왈써씨는 겸손하게 답례를 주시고는 오늘같이 좋은 날은 우는 것이 아니라며 빨리 눈물을 닦으라고 하셨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방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그간 준비해온 태권도 시범을 선보였다. 개관 전부터 정기적으로 신문광고, 포스터, 전단지를 포함한 각종 선전을 한 덕분인지 시범을 보일 때는 도장에 자리가 부족해 결국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는 방문객들이 있어 이를 집사람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개관시범을 선보이고 나서 월요일부터 관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재즈 체조반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태권도 어린이반은 일주일이 채 못 되어 입관을 받지 못할 만큼 자리가 찼고 청소년 및 성인반도 한 달이 못 되어 더 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린이들은 체구가 작아 한 반에 50~60명까지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성인의 경우는 50명이 들어서면 발차기 운동하기가 불편하여 대련 시 2교대로 운동을 해야 했다. 태권도장에 5개반을 운영하니 하루에 200~260명이 운동을 하러 체육관을 찾는 셈이었고 대부분 일주일에 2회 운동을 하러 오기 때문에 주당 관원의 수가 500명이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세 곳으로 분리된 헬스장에도 잘 갖추어진 시설 때문인지 하루하루 입관 회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헬스클럽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퇴근 후인 오후 5시부터 9시 사이에 몰리기 시작했다. 곧 사람들이 들어설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운동을 하려고 운동기구 앞에서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집사람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체육관을 이용하면 회비를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을 관원들에게 주기로 했다. 즉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정주부나 학생들은 가능하면 조용한 오전 시간에 운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관원 홍보도 신문지상을 비롯하여 각종 광고를 지속해 나감으로써 새 체육관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일 년이 채 못 되어 칼스루헤 체육관은 천명에 달하는 관원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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