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초등학교에 행정지원 공익근무요원이 교육청으로부터 파견됐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이 요원은 행정업무 이외에도 모든 일에 열성을 보였다. 그런 사람을 학교에서 싫어할 리 없었다. 하지만 복무기간이 끝나면 떠날 사람이니 은근히 걱정이 됐고, 특히 당시의 조만식 교장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06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기간이 끝났어도 그는 학교에 남았다. 상록초등학교 태권도부 지도자로.

고형근 코치가 선수들에게 직접 미트를 차 보이며 발차기 지도를 하고 있다.

고형근(27) 코치가 이끄는 상록초교 태권도부 창단 당시의 이야기다. 고교시절부터 엘리트선수를 육성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던 고 코치는 시력 때문에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었다. 인연이란 참 오묘하다. 때마침 태권도에 대한 열의를 가졌던 조만식 교장은 고 코치와 상의한 끝에 팀을 창단하는 결단을 내렸다. 고 코치는 그래서 자신의 공익근무지였던 상록초교에 팀을 창단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고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창단 된지 2년 만인 지난해 상록초교는 소년체전 우승이라는 대어를 낚으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기대회에서 금 2개와 은 3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고 코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한편으로는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첫 번째 팀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도록 훈련에 열중했습니다. 기본기에 충실한 발차기와 스텝 위주의 지도를 했습니다. 어차피 메달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본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혹시 성과에 너무 집착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손남식 교감이 한마디 거든다.

“나는 태권도부가 창단되기 한 달 전에 이 학교에 부임했습니다. 처음 고 코치를 보고서는 저런 덩치로 혹시 아이들에게 가혹행위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봤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고 코치의 남다른 지도력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강압적인 지도를 지양하고 인성교육을 상당히 중시하는 교육방법을 취합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할 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상록초등학교 태권도부가 짧은 시간 내에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코치의 지도력, 지도에 잘 따라준 선수, 학교의 물질적, 정신적인 지원, 학부모들의 단결까지 잘 맞아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3년간 대회마다 함께 다닐 만큼 관심도 애정도 많은 손남식 교감의 말이니 그만큼 신뢰가 간다.

작년에 열린 제37회전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한 선수들과 고형근 코치.(앞줄 왼쪽부터 박수형, 조강민, 이승윤)

이런 상록초 태권도부에게도 고민은 있다. 체육관이 없어 작은 교실 한 칸에서 20명의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20명이 운동하기에는 상당히 비좁은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겨울에는 학교 사정으로 동계전지훈련도 떠나지 못하게 됐다.

동계전지훈련은 내년 준비를 위해 선수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초등학교 선수들의 경우 짧은 시간에 체력과 실력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타 지역 선수들과의 교류는 어린 선수들에게 큰 경험이 된다. 생각지도 못한 동계전지훈련 취소로 고 코치의 근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느 팀이나 환경이나 지원이 완벽할 순 없지만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시키고 싶은 것이 지도자의 마음. 창단 3년째 당당히 강호대열에 합류한 상록초교 태권도부가 2009년 새해에는 또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신병주 기자  sign2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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