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은 지난달 25일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제2차 전자호구 시연회를 통해 4개의 참가업체 중 라저스트(Lajust)사의 전자호구를 유일한 기술요구조건 충족 제품으로 평가했다. 이번 시연회 결과로 세계연맹은 2008년 북경올림픽에 전자호구를 도입하기 위한 추진계획에 탄력을 받게 됐다.

제2차 전자호구 시연회가 열린 경희대학교 실내농구장. 세계연맹 관계자들을 비롯한 태권도계의 인사들이 시연회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전자호구가 성공적으로 태권도 경기에 도입,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연회를 평가를 통과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앞으로의 테스트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보완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또 전자호구 도입에 따라 세계연맹이 준비해야 할 부수적인 사안들도 적지 않다.

전자호구가 도입되면 경기규칙, 심판제도, 경기기술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관전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계연맹의 대처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세계연맹은 전자호구 도입에 따라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이러한 제반 사항들을 간과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공인을 위해 당초 세웠던 업무절차조차 무시하고, 전자호구 사용에 따른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명확한 기준도 설정하지 않아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원칙 입각한 공인절차 필요

지난달 28일 세계연맹은 2 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제2차 전자호구 시연회 결과와 전자호구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제출한 평가를 발표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자호구 평가에 대해 의구심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부터 그토록 강조해왔던 표준 스펙 부합여부는 간데없고 기본적 기술요구조건이라는 표현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번 시연회가 기술적인 측면을 평가하기 위한 취지에서 실시됐다 하더라도 표준 스펙 부합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원칙에 입각한 사안이었다.

표준 스펙의 내용 중 경기운영적인 규칙(무선 규칙 포함)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51가지의 세부사항이 명기돼 있다. 그러나 이번 시연회 후 알려진 내용은 표준 스펙의 부합여부에 대한 판단은 찾아볼 수 없고 특별위원회 위원들의 회의 결과만 드러나 있다.

또 보도자료에는 실험실테스트, 필드테스트, 공인과정 등 상세한 추후 일정도 없다. 세계연맹은 지난해 12월 공인을 원하는 업체들에게 전자호구 표준스펙을 발송하면서 오는 8월 1일 전자호구 공인을 포함한 세부일정을 통보했었다. 시연회 평가결과가 나온 현재 시점에서 관계자들은 ‘조만간’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며, 세부일정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세계연맹이 전자호구 추진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연맹은 공신력 있는 국제스포츠기구로서 체계적이고 투명한 추진계획과 절차를 갖춰 전자호구 공인에 대해 한점 의혹이 제기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기규칙, 기술 변화 불가피

전자호구가 실제 대회에 도입되면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것은 경기규칙이다.

세계연맹은 올해 첫 공식대회인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부터 심판 5심제(주심 1, 부심 4), 점수상한승제(12점을 먼저 획득하는 선수가 승리), 점수차승제(7점의 점수차가 나면 승리), 경기장 축소, 손 보호대 착용 등 지난해 4월 스페인 마드리드 총회에서 승인된 경기규칙을 적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자호구가 본격적으로 경기에 도입되면 경기규칙들은 자연스럽게 전자호구에 의한 판정 시스템에 맞게 변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호구를 사용할 때 적용되는 경기규칙 중 대부분의 규칙은 변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경기기술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규칙과 경기장비가 변화하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경기기술이다. 코칭스태프들은 전자호구를 사용했을 때 득점에 가장 효율적인 기술과 전술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찾아내고 이를 선수들에게 교육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심판 판정방법인 눈과 귀에 의존한 판독은 전자호구가 도입되면서 전자시스템의 감응에 의한 타격과 강도 측정 판독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선수들은 득점하기 위해 타격의 소리보다는 강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에 중점을 두고 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태권도 저변확대에 가장 중요한 사항인 관중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는 명쾌한 타격 소리를 통해 선수의 득점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지만 전자호구가 도입되면 소리보다는 전광판에 의존해 득점여부와 경기결과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호구 도입 따른 대책 마련해야 

전자호구의 가장 큰 특징은 타격강도의 측정에 의한 득점인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세계연맹 경기규칙에 구분돼 있는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남녀 체급에 따른 타격강도의 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타격강도의 기준이 설정되면 이를 토대로 전자호구 제품의 강도레벨을 맞추고 테스트를 거듭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전파와 관련된 검증작업도 실시돼야 한다. 지금까지 두 차례 열린 전자호구 시연회는 모두 전파부분보다는 경기운영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전자호구 특성상 외부의 전파방해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과 여러 코트의 경기에서 사용해도 전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품질이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전자호구를 경기 도중에 고의적으로 파손했을 경우에도 전자호구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시연회 평가를 유일하게 통과한 라저스트사 제품의 경우 유효 타격 기술과 무효 타격 기술을 구분하기 위해 손과 발에 센서를 부착하고 있다. 센서의 측면만이 아니라 손발보호대와 병행해 사용될 수 있는지도 세심히 점검, 보완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호구 도입에 앞선 필수적인 준비작업은 필드테스트다. 필드테스트를 통해 경기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호구를 2008년 북경올림픽에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2년 동안 철저한 공인절차를 거친 후 세계 각국에 전자호구를 널리 보급, 국내는 물론 대륙별 대회에서 실제로 사용함으로써 전자호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관중들에게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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