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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범 수기] “나는 부끄럽지 않다” [8]포르츠하임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첫 걸음
생활비 모자라 시계공장 아르바이트도
  • 곽금식 사범
  • 승인 2008.10.13 16:22
  • 호수 610
  • 댓글 0

광산 측에서는 계약을 더 연장하자고 제의해왔다. 우선 기뻤던 사실은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장기간 고용함과 동시에 임금 역시 인상해 준다는 제안은 3년 동안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성실히 일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추호도 연장할 마음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 나의 계획대로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것이 희망이었던 것이다.

곽금식 사범.

당시 사정으로는 광산을 떠나면 체류 및 노동허가가 취소되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단 비자면제는 현지인이나 파독 한국간호원과 결혼을 하는 것, 혹은 학업을 시작하여 학생으로 체류하는 방법, 아니면 다른 고용주가 있어서 독일 사회에 취직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다. 아직 몇 개월 여유가 있으니 미리 계약을 연장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날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오랫동안 태권도를 가르친 대선배 김광일 사범님께서 지관을 개관하니 같이 시범을 하자고 제의해 오셨다. 태권도 관계로 자주 왕래가 있었던 장광명, 송찬호 사범님과 함께 그곳에 방문해 이런저런 사정을 의논드렸다.

“참 잘 되었네, 지금 낸 지관에 사범이 필요하니 원한다면 같이 고생을 해보자.”
김광일 사범님은 연배도 나보다 열한 살 위이시고 16년이나 먼저 독일에 오셔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독일에 태권도를 보급하신 분이다. 처음 독일에 오셨을 때 대학을 다니셨기 때문에 독일어 또한 유창하셨고 72년 뮌헨 올림픽 때 북한선수단 통역 일도 하셨던 분이어서 이곳 생활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셨다. 또한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지적이셨고 세련된 분이어서 이런 분과 같이 태권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즐거웠다. 사범으로 일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테고 광산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여서 나는 심사숙고할 필요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로쓰만 부부와 주인집 내외도 잘 되었다며 기뻐해 주셨다. 나는 광산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삶을 위해 슈투트가르트로 떠났다. 이곳의 태권도 수련생들, 그로쓰만, 휘스켄 주인집 내외를 만나 석별의 정을 나누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희망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1974년 8월 8일

광산 생활 3년을 청산하고 YMCA의 강당을 독일인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김광일 사범님께서는 슈투트가르트에 본관과 지관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포르츠하임에 새로 지관을 내셨는데 포르츠하임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서쪽 50km 가량 떨어진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였다. 이곳의 지관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지역적으로 볼 때 태권도 도장을 하기에 규모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선입감이 들었지만 태권도 사범으로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 기쁨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와 용기를 가졌다.

초급자 한 시간 반, 유급자 한 시간 반씩 매일 세 시간씩 지도를 하고  관원들이 다 빠져나간 후까지 기다렸다가 마무리 청소까지 직접 해야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첫 월급은 300마르크였다 광산에서 월급으로 지급받은 5분에 1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집세 160마르크를 지불하고 나면 생활하는데 턱없이 부족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지속해 나가야 할지 걱정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몇 달을 기다린 끝에 겨우 찾은 일자리는 시계공장이었다. 포르츠하임은 독일 전역에서 생산되는 금은보석과 시계의 60퍼센트 이상을 생산해 내는 도시로 가공업체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오후에는 태권도 지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오전에만 근무할 수 있도록 특별히 부탁을 했다. 시계공장에서의 오전 시간의 벌이로 부족한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 무엇이든 맡겨진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시계공장에서의 일은 대부분 금속, 보석류를 손으로 갈고 깎고 광을 내는 쉬운 일에 속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 금시계 케이스를 손질하는 일을 하던 직원이 병가로 나오지 않았는데 공장장이 그 자리가 중요한 업무이니 내가 대신 일을 좀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해왔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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