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세계적인 무술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은 분명 한 두 사람만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태권도의 조직을 강화하는 데 힘쓴 이들도 있었고, 경기화를 위해 애쓴 이들도 있었다. 또 태권도의 보급을 위해 전 세계에서 활동한 사범들의 노력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초창기 태권도의 발전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들의 노고를 태권도계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태권도신문은 창간 13주년을 맞아 오늘날 글로벌 스포츠로서 성장한 태권도 발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원로들의 근황을 재조명한다.[편집자 주]

채명신 초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초창기 태권도 통합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채명신(蔡命新), 1926년생, 올해 우리나이로 83세. 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그러나 채명신 회장은 태권도계를 넘어 군인으로서, 외교관으로서 한국 근대사에 큰 이름을 남겼다. 특히 군인으로서의 채 회장은 한국 현대 군사(軍史)에 손꼽히는 명장(名將) 중의 한 사람이다.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서 채 회장은 월남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아 박정희 대통령이 질투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채 회장은 군인으로서 더 유명하긴 하지만, 태권도 초창기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2년 12월부터 1964년 4월까지 초대 대한태권도협회(당시에는 대한태수도협회) 회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채 회장이 말하는 초창기 태권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채 회장을 22일 용산구 이촌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채 회장을 만나기 전 우선은 걱정됐던 것이 건강. 다행히 미리 전화를 통해 들은 채 회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이촌동 자택에서 만난 채 회장은 ‘정정하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기자의 만나본 소감이다.

채 회장은 1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잔잔하지만 분명한 어투로 기자에게 태권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포함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건강은 어떠신가요?
“괜찮아. 다른 데는 괜찮은데, 눈이 좀 안 좋아졌어. 대상물이 중복으로 보인다구. 지금 자네 얼굴도 좀 겹쳐서 보여. 초점이 잘 안 잡히는 거지. 병원에서 약을 먹고 있는데 최근에 개발된 약이라더군. 좀 비싸. 한 알에 4만원이야.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약먹는 편이 나으니 먹고 있다네.”

- 회장님께서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으셨던 당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태권도를 태수도라고 했지. 협회를 만들었는데, 난 처음에는 최홍희 장군을 시키려고 했어. 당시 29사단장이었지. 그 양반이 처음부터 태권도를 했으니 그가 하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는 거야. 최 장군이 회장을 하면 참여 안하겠다는 거지. 내가 하면 같이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초대 회장을 맡게 됐지.”

- 당시 태권도계는 어땠습니까?
“당시에는 단증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어. 유단자가 얼마나 되는지 다 파악이 안 될 정도였지. ‘우리 관(館)에 유단자가 얼마다’ 하는 식으로 세 과시를 하기 위한 것 같았어. 그리고 형(품새)도 비슷한 게 많았어. 조금만 바꿔서 이것이 우리 형이다, 하는 식으로. 그래서는 태권도의 권위가 서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각 계파 대표자를 소집해 협회를 통해 단증이 나가도록 만들었지. 그리고 각 계파의 형을 통합 정리하도록 했지. 내가 ‘5.16 혁명’ 후 감찰부장으로 있으면서 태권도를 통합하도록 만든 거지.”

- 초창기였던 만큼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많았겠습니다.
“그렇지. 특히 우리 태권도는 단순히 싸움하는 기술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심신단련’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이것을 바탕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고양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기능도 하고, 약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태권도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체력단련과 정신연마, 인격수양을 할 수 있는 태권도로 만들 생각을 했지.”

- 말씀하신 것이 지금 태권도의 기본정신이 된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자리잡혀가고 있었는데, 내가 미국에 가게 되었어. 그래서 태권도인들에게 ‘당신들끼리 적당한 사람을 선출해 잘 이끌어나가라고 말하고 갔지. 그런데 그 후 또 의견들이 갈라져서 분열되고 그랬지. 당시 ‘운동하는 사람들 고집들이 있다 보니 잘 융합되지 않는 면이 있구나’ 생각했었지. 결국 태수도협회는 태수도와 태권도로 나뉘고, 나중에는 태권도협회와 최홍희 장군이 하는 국제태권도연맹의 둘로 나뉘게 되었지.”

- 최홍희씨와는 인연이 많으신 걸로 압니다만.
“최홍희 장군은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채명신 장군이다’하면서 나를 상당히 존중해주고 그랬지. 연락도 종종 하고 그랬어. 그런데, 내가 1974년도엔가 그리스대사로 있을 때 최홍희 장군한테서 연락이 와서, 국제태권도연맹 간판을 나한테 넘기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현직 대사로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한 적이 있지.”

- 최홍희 장군은 자서전에서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견제 때문이라고 주장하던데, 어떻습니까?
 “그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지. 최 장군이 말레이시아 대사를 하던 시절 말레이시아에 태권도를 보급해 그런 데에는 공이 있는 사람이지만, 금전에 관해서는 깨끗하지 못한 점이 있었어. 욕심이 많았지. 그런 것들이 문제가 돼서 청와대에 보고가 되고 결국 대사에서 면직이 된 거야. 이런 와중에 이북에서 접촉이 온 거지. 최 장군은 친형이 북한 노동당 간부였어. 그래서 핀란드에선가 아마 최 장군이 형을 만나 (북한으로 가는 것이)결정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 그리고 나중에 최 장군이 최덕신(崔德新, 1914년생, 전 외무부장관, 월북) 장군을 포섭한 거야. 나중에 내가 미국 보스턴에 있을 때 최덕신 장군으로부터 전화가 왔어. ‘당신이 조국에 기여한 걸 보면, 당신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지 않은가’ 하는 거야. 나보고도 같이 북한으로 가자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이한테 “’여보, 최 선배. 당신은 독립운동도 한 사람이고, 전쟁 때 당신 밑에서 죽어간 수많은 부하들이 있는데, 좀 섭섭한 점이 있다고 해서 어찌 국가에 반역을 하고 이북으로 갈 수가 있소’하고 말했지. 그 후로는 연락이 오지 않았어. 나중에 최덕신과 최홍희는 이북에서 김일성이 평양시민 군중대회를 해줄 정도로 영웅대접을 받았지. 그리고 나서 이북의 지원으로 캐나다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태권도를 전파한 걸로 알고 있어.”

- 회장님께서는 주월 한국군 초대 사령관을 지내셨는데, 월남전이 태권도의 세계전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태권도의 본격적인 세계화는 월남전부터라고 할 수 있어. 당시 한국군에는 전투복무나 일반복무를 하지 않고 태권도만 지도하는 ‘태권도교관요원’이 있었어. 대략 100명을 뽑아 훈련시키면 60명 정도가 통과했는데, 경쟁이 치열했지. 이 태권도요원들의 모습을 보고 미군들이 너도 나도 배우려고 했지. 그래서 태권도가 전 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어. 물론 그 전에 최홍희 장군이 말레이시아 등에서 보급을 먼저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월남전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어.”

채명신 회장은 태권도 외에도 월남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면 제약과 매체의 성격상 이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했지만,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채 회장과의 인터뷰는 재미있는 현대사 책 한 권, 또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만큼 흥미로웠다. 1시간여의 짧은 인터뷰로는 채 회장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역할에 비해 공로가 덜 알려진 채명신 초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오늘의 젊은 태권도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듯 싶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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